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청사초롱

[청사초롱-박용천] 한민족의 정신적 위기 상황

[청사초롱-박용천] 한민족의 정신적 위기 상황 기사의 사진
3∼5월은 1년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시기라고 의학계에는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 양쪽의 자살에 관한 통계보고였기 때문이다.

남한보다 높은 북한의 자살률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2012년도 통계를 보면 북한의 자살률은 남성은 기아나 리투아니아 스리랑카에 이은 세계 4위를 기록했으며 여성은 1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남녀 모두 6위를 차지했다. 북한의 사정은 자료를 구할 수 없어 자세한 내막을 모르겠지만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위기가 아닌가 싶다. 남과 북이 동시에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무언가 공통되는 원인이 있음직한데 6·25전쟁의 후유증이 이런 현상으로 지연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미국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월남전이 끝나고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 시발점은 의학계라기보다는 영화에서 참전용사들의 고통이 소개된 이후였다. 영화 ‘람보’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참전용사의 난폭함을 묘사했고, 그 후 많은 전쟁 영화에서 참전용사들의 심리적 고통과 후유증들을 알려주었다. 그 이후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1980년 처음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사용하였고, 2014년 새로 발간된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 분류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그 당시 사건의 재경험 △자율신경의 각성 △회피반응 △인지기능과 기분의 부정적인 변화 등 4가지 영역으로 좀 더 자세하게 분류했다. 그리고 월남전 참전용사에 대한 진료와 연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연구가 미미한 상태였고, 더구나 6·25전쟁이라는 민족적 재난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는 거의 없다.

6·25전쟁 후유증에 대한 연구 필요

남북한이 동시에 이렇게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원인에 대해 남북이 공동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남북이 동시에 겪은 6·25전쟁이야말로 엄청난 재난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없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영화 ‘국제시장’을 본 이후 전쟁의 후유증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진료 중 월남한 환자들의 과거력을 물어보니 처음에는 회상하는 것을 회피하다가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시키니 전쟁 중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해당할 만한 참혹한 일들을 겪었던 사실을 털어 놓았다. 현재 그분들이 정신과를 찾게 된 원인 중 밑바닥에는 그 당시 받았던 정신적 충격이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고, 현재의 증상에도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의 정신적 충격과 성장 과정의 문제와 상처받은 그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의 문제점 등 전후 시대 우리 사회의 정신병리현상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6·25전쟁을 겪었던 노인들이 악몽을 꾸거나 치매나 섬망(?妄)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쟁 시 쫓기며 긴박했던 위기 상황을 재경험하는 것을 보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잠재해 있고, 그것이 자녀 양육에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쟁을 겪은 부모가 아이들이 총이나 칼 등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녀들로서는 부모의 그러한 금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이런 전쟁이 반복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6·25전쟁이나 월남전을 겪었던 사람들의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범국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남북한에서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높아진 자살률에 대한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박용천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