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창현] 두 차례 금융위기와 미국 기사의 사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제공한 1차 구제금융 80억 달러는 금방 소진됐다. 그러나 12월 25일 210억 달러의 추가지원 계획이 발표되면서 시장은 상당부분 안정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국무회의에서까지 이 사안이 논의됐다. 일부에서 한국이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을 하도록 한 후 외채 협상을 진행시키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 경우 방위력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져 미군의 안전에 상당부분 저해요인이 되니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IMF의 지원을 받은 우리나라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환율조정 등을 통해 최단시간 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혹시라도 당시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게 됐다면 어땠을까. 상상할수록 아찔해진다. 미군 주둔이 제공하는 물리적 안보가 경제적 안보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도 우리는 미국의 직접적 도움을 받은 바 있다. 2700억 달러에 달했던 외환보유액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2000억 달러대 초반으로 하락한 상황에서 강만수 경제팀이 중심이 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의 300억 달러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한 지원방안을 이끌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환위기 당시 미 재무장관이었던 루빈 전 장관이 글로벌 위기 때는 씨티은행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러한 지원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원 계획이 발표되자 외환시장은 급격히 안정됐다. 우리가 벌어서 쌓아놓은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보다 발행국인 미국이 찍어서 제공하는 300억 달러가 훨씬 위력이 있다는 뼈 있는 지적도 나왔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낸 성적은 놀라운 수준이다. 80년대에 세계 경제학계는 대한민국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우리보다 잘살던 필리핀 같은 국가들을 제치고 격차를 더욱 벌리는 부분에 주목했다. 결국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경우 격차가 줄어든다는 고전적 성장론 대신 국가별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신(新)성장이론 즉 내재적 성장론이 등장했다. 우리나라가 경제성장론을 새로 쓰게 만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주요 20개국(G20) 그룹에 속한 선진신흥국이다. 그리고 이러한 괄목할 만한 성장 뒤에는 미국의 다양한 지원이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혹자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 때문에 우리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거꾸로 우리를 지원하는 것이 자신에 도움이 되는 나라가 존재하고 그 나라가 세계 최고의 슈퍼파워라는 구도 자체가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 상호 간에 가치를 공유하면서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동맹국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문제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사드는 북한 핵으로 인해 필요한 것이고 AIIB를 통해 북한을 끌어들일 경우 통일에 상당한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다는 면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브레턴우즈 3.0이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위안화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하기까지 아직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달러의 지위에 별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들이 써주지 않는 원화를 사용하는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는 한·미 관계가 가진 경제적·통화적 측면의 중요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테러를 당한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의 상처가 아물듯 한·미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대한민국이 미국과 그야말로 “같이 가면서” 조속히 선진강국으로 도약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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