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세월호 진상규명 뭐가 그리 두려운가 기사의 사진
세월호 참사 한 달 만인 지난해 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 17명을 면담한 뒤 이렇게 말했다. “진상규명에 있어 유족 여러분에게 여한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상처가 치유되지 않겠나.” 그리고 사흘 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고 필요하면 특검도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눈물을 보면서 안도했다. 대한민국의 고통이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유가족들은 지금 ‘416시간 농성’과 함께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11개월 전 대통령이 했던 ‘눈물의 약속’이 깨졌다면서 말이다. 이들이 다시 광장으로 모인 것은 지난달 27일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때문이다. 시행령안대로라면 각 소위원회 위원장이 해야 할 기획조정 업무는 공무원이 담당하게 된다. 조사를 지휘하고 종합보고서 작성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도, 핵심인 진상규명에 나서는 조사1과장도 공무원이 맡게 된다. 제일 먼저 조사 대상이 될 해수부와 국민안전처 공무원에게 오히려 ‘칼자루’를 쥐어준 꼴이다. 공무원은 지원만 하도록 돼 있는데 시행령안에선 조사를 주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국회가 만든 모법(母法)의 취지를 훼손한 것도 모자라 정부가 새로운 입법을 해버렸다. 주객이 전도된 황당한 시행령안인 것이다.

9·11테러 이후 만들어진 9·11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를 보자. 조사위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추천한 10명의 상임위원으로 꾸려졌다.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정원 감축(120명→90명) 논란이 일자 해수부는 9·11조사위 정원도 80명에 불과했다고 했다. 특조위보다 적지만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들의 권한은 우리와 차원이 달랐다. 수사권은 없었지만 이들에겐 강력한 소환권이 주어졌다. 총 12차례의 청문회를 연 조사위는 조지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등 고위 공직자들을 줄줄이 증언석에 세웠다. 미국 역사상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대통령 일일보고(PDB)’까지 제출받았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2004년 7월 내놓은 최종 보고서는 부실투성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 이유는 조사위가 독립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추천한 사무총장은 백악관 정치고문과 네 차례나 사적으로 만나는가 하면 백악관 고위 인사들과도 수차례 전화 통화하며 조사 과정을 알려줬다. 조사위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뒤늦게 만들어진 것도 진실 규명에 다가가지 못한 요인으로 꼽혔다.

세월호 특조위는 9·11조사위에 비해 독립성과 객관성이 한참 떨어진다. 권한의 한계도 많은 편이다. 9·11조사위가 성역 없는 조사에도 진상 규명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세월호 특조위가 이런 상태로 과연 얼마나 참사의 진상에 접근할지 의문이다. 혹자는 검찰과 감사원 등의 발표로 세월호의 진상이 거의 나오지 않았느냐고 강변한다. ‘대통령의 7시간’도 근거가 없다는 수사 결과도 발표됐다. 아무 거리낌이 없다면 굳이 특조위를 꼭두각시처럼 산하 기관으로 격하시키려 할 이유가 없다. 특조위의 정상적인 출범을 방해하는 처사는 정부 스스로 기존 발표 자료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방증이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으로 발령되는 만큼 이 문제는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 자신도 진상규명을 피해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세월호와 함께 묻혀버린 ‘진실 몇 조각’이라도 새로이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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