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순원] 다시 사회적 대화를 기대함 기사의 사진
지난 7개월여 동안 지속되었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논의가 합의 시한을 넘긴 지 8일 만에 결렬됐다. 밤잠을 미루고 끼니를 걸러가며 3대 현안(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그리고 사회 안전망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합의에 대한 기대를 키워왔으나 결국 조정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협상은 원래 그런 것이니 이를 두고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 실패의 원인을 되짚어 보는 일은 앞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논의 과정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와 변화를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노동시장 내 이해 경쟁의 지면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시장 내 비용과 편익을 배분하는 메커니즘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근로계층의 이해관계가 통합되었지만 작금의 노동시장은 청년과 중장년,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조직 노동과 미조직 노동 등으로 분화되었다. 더욱이 이들 사이의 관계는 이익과 손실이 교환되는 제로섬적 속성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통합적 교섭을 특성으로 하는 노사정 사회협약을 어렵게 하는 장애가 되었다.

다음 문제는 고용체제 변화에 따른 갈등이다. 우리나라 핵심 기업의 고용관계는 장기 고용과 연공형 임금체계, 그리고 근로시간 조정을 통한 노동 수요의 관리를 핵심으로 발달해 왔다. 통상임금, 장시간 근로 및 임금체계 관련 이슈는 모두 이러한 고용체제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러한 체제가 급격히 와해되었다. 고용관계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약화됐고 고용계약의 주기도 단축됐다. 이런 환경에서 교환에 참여한 행위자들은 자신의 현재 이익을 당장 극대화하고자 하며 이해관계 조정의 국면에서 기회주의적 선택을 하기 십상이다. 이번 노사정 협상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이 보여준 시니컬한 반응의 이면에 이러한 불확실성이 내재한다.

마지막 문제는 노동조합의 리더십 부재다.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핵심적 두 가지는 의사결정의 위계적 통합성과 교섭구조의 집중화 정도다. 통합성은 노동조합이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의를 구성하는 의사결정 능력이며 나아가 그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권위의 수준이다. 통합성 수준이 높을수록 노동조합 리더십이 강하다. 교섭구조 또한 노동조합의 조직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변수다. 교섭 구조가 집중될수록 협약의 포괄 범위와 적용 대상이 넓어지며 아울러 노동조합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확대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조합의 리더십 권위는 분산되어 있으며 집중화 수준도 매우 약해 기업별로 임금과 근로조건이 다양하다. 이 또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장애요인이 되었다.

근로계층 이해관계의 다양화, 고용체제의 불안정, 취약한 노동조합 조직력 등을 고려하면 2015년 노사정 대타협이 난항으로 이어져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이제 노사정 모두는 근본부터 다시 질문하고 성찰해야 하며, 노사정위원회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체제를 재구축하고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노사정위원장의 사퇴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지금은 자리에 앉아 교착에 빠진 의제들을 새롭게 구성하고 조정의 목록을 재배열하는 것이 더 급하다. 노사정 논의가 결렬될 때마다 지배구조가 교체되고 의제가 새롭게 반복되어서는 노동시장에 대한 진전된 사회적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사정의 진지한 성찰을 다시 한 번 기대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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