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노동문제는 왜 가르치지 않나 기사의 사진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5580원입니다.” “이런 시급 쬐끔 올랐어요.” ‘걸스데이’ 혜리가 등장한 알바몬 광고 덕분에 요즘 청소년들은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은 몰라도 최저시급 5580원은 안다고 한다. 올 2월 2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이 광고 영상에 대한 ‘좋아요’ 숫자만 지금까지 280만건을 넘었다. 시리즈로 제작된 이 광고에 쏟아진 뜨거운 호응과 소상공인들의 반발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법 교육이 얼마나 무시되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교에서 노동 인권에 대해 설명을 듣거나 교육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중·고교생은 전체 조사대상 3906명 가운데 16%에 불과했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미생’ ‘송곳’과 같은 웹툰이나 드라마를 통해 노동법을 익히게 된다. 한 외국계 양판점에서의 노동조합 결성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송곳’에는 노무사 구고신이 나이 든 노동자에게 “이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야 되는 건데…”라며 한숨을 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교육은 노동 자체를 외면하거나 부정적으로 가르친다. 중·고교 사회 교과서를 검토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교 법과 정치 교과서에는 최저임금, 노동조합, 노동법 등이 언급되지 않는다. 경제 교과서 가운데는 최저임금을 설명한 것들이 있지만,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적정한 선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식으로 서술돼 있다. 송태수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노사갈등은 시장경제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인데도 교과서는 마치 갈등이 없는 것처럼 서술한다”면서 “일본의 사회과 교과서는 노동관련법을 헌법만큼의 비중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가장 큰 곳은 노동부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단결권 등 노동3권과 국가의 최저임금 보장의무를 헌법에 명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누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하면 사용자에 앞서 주변 노동자와 가족들이 ‘패가망신할 일 있느냐’며 말리는 게 우리 현실이다. 영세 기업인, 심지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도 최저임금 지급의무를 종종 위반하지만, 세금을 포탈할 생각은 그만큼 쉽게 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학교에서 국민의 4대 의무는 많이 듣지만,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상 권리를 실생활과 관련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헌법에는 신체, 양심, 종교, 언론·출판, 집회·결사 등의 자유, 환경권, 행복추구권, 국회에 청원할 권리 등 의무보다 훨씬 더 많은 권리가 명시돼 있다. 그렇지만 교육과정과 주류 언론이 이런 기본권의 중요성을 외면한다면 국민들은 노동이나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무비판적 경제 및 기업관을 갖게 된다. 산업계와 정부는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교과과정에 노동과 인권 관련 내용을 가급적 담지 않으려는 것 아니겠는가. 헌법이나 노동교육, 특히 권리와 책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모의 노사 관계를 연습한다고 한다.

청년들의 취업난과 일자리 질 저하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지만,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은 부족하다. 대기업 정규직이 근로시간과 임금을 양보하는 것도 해법의 일부이긴 하지만, 노동의 몫으로 한정된 파이를 놓고 갈라먹으라는 식이라면 난국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더 큰 그림 속에서 노동과 임금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최근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대화가 결렬된 것도 크게, 멀리 보면 정부를 비롯한 당사자들에게 노동의 존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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