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3·1운동… 투옥… 옥중 복음전파… 민족과 함께한 강규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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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산정현교회 4대 목사인 강규찬(1874∼1945·사진) 목사는 한국교회가 사회적·민족적 책임을 충실히 감당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1907년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던 강 목사는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으며, 1917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산정현교회에 부임했다. 강 목사는 105인 사건의 동지인 선우혁 양전백 이승훈과 함께 독립운동을 준비했으며, 1919년 3월 1일 평양 숭덕학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의 선두에 섰다.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인물도 강 목사다.

그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일 때도 95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1920년 출옥 후 조만식 김동원 오윤선 등 산정현교회 당회원 및 성도들과 중심이 돼 애국애족 운동의 일환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전개했다. 숭인학교 숭덕학교 숭현학교 숭실중학 숭실대학 평양신학교 등 교회와 사회를 위한 지도자를 배출하는 학교들에 대한 재정적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3·1운동은 산정현교회에 큰 시련을 안겨줬지만 강 목사와 성도들에겐 강한 민족의식을 심어줬다. 강 목사의 영향을 받은 조만식 김동원 오윤선 최정서 장로 등 산정현교회 장로들은 노회와 총회는 물론 사회와 민족운동 전반에 두루 영향을 끼쳤다.

박용규 총신대 교수는 “강 목사가 교회사적 민족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지만 연구는 미흡한 상황”이라며 “한국교회가 반기독교 세력의 영향으로 외세종교 취급을 받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강 목사처럼 민족과 함께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는 오는 9월 강 목사를 기념하는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프로젝트는 국민일보·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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