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성완종 리스트’로 길을 잃어버린 여권 기사의 사진
핵폭탄급 폭발력을 지닌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싸고 정국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모든 이슈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국정은 마비된 듯하다. 나흘간의 국회 대정부질문은 정책 질의가 실종된 채 리스트에 관한 여야 공방으로 점철되면서 16일 마무리됐다.

국면 전환을 꾀하기 위해 지난달 막이 오른 ‘부정부패와의 전쟁’ 드라마가 뜬금없다 싶더니 결국 조기 종영을 고하고 예기치 않은 ‘정치부패와의 전쟁’ 드라마로 대체된 셈이다. 전 정권을 겨냥한 기획사정과 별건수사의 부메랑은 치명적이다. 현 정권의 핵심 8명이 의혹의 중심에 섰다. 믿었던 검찰은 총부리를 돌려 아군 지휘본부를 겨누고 있다. 초토화된 여권은 우왕좌왕하다 길을 잃어버렸다. 여권이 제대로 중심을 잡고 대처했어야 하는데 충격이 컸던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대통령, 국무총리, 새누리당 모두 이 사건을 대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

먼저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말은 과거 정권으로 전선(戰線)을 넓히라고 검찰에 주문한 격이어서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면서도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측근들이 연루된 데 대한 유감 표명도 없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이나 2012년 대선 때 본인 캠프에서 불법 자금을 썼다는 말이 된다.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사과는 아닐지언정 유감의 말이라도 국민에게 전하는 게 올바른 자세다. 제삼자가 말하듯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3000만원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총리의 거짓 논란은 총리로서의 자질이 있는지조차 의심케 한다. 잇단 말 바꾸기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2012년 대선 지원유세 여부, 2013년 국회의원 재선거 때 성완종 전 회장과의 독대 여부 등에 관한 해명이 수시로 바뀌거나 기억에 없다며 피해나간다. 그러고는 “큰 틀에서 거짓말을 한 것은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총리로서의 권위와 위신은 이미 추락했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도 속속 나오고 있다. 스스로 거취를 밝히는 게 나라를 위한 길이다. 결백은 야인으로 돌아가서 증명하면 되는 것 아닌가. 리스트에 거명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실장 재임 시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한 사실을 번복했다. 착각했다는 것인데 그럼 기억에 없다고 하지 왜 완강히 부인했는지 모르겠다. 당사자들의 릴레이 거짓말을 보는 것 같다.

연일 야권을 물고 들어가려는 새누리당은 비겁하다. 어찌 보면 정신적 공황상태의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애처롭기까지 하다. “여야가 함께 2012년 대선 자금 수사를 받아야 한다”(김무성 대표), “(노무현정부 시절 성 전 회장 2차례 특별사면과 관련) 문재인 대표도 필요하다면 수사를 받아야 한다”(박대출 대변인)…. 어처구니없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무작정 같이 죽자는 물귀신 작전이다.

수사 과정에서 야당의 불법과 비리가 드러날 경우 검찰이 조사하면 된다. 자숙해야 할 여당이 무책임한 공세를 계속 펼치면 부정적 여론을 자초할 뿐이다. 여당은 2002년 대선 불법자금 사건으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들은 후 천막당사에서 생활했던 정신으로 돌아가 환골탈태를 다짐해야 한다. 위기 모면에 급급하면 여권 전체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패로 가라앉은 세월호처럼 침몰할 수밖에 없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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