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기억과 위로 기사의 사진
한 사람의 기억은 곧 그 사람 자체라고 할 만큼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어린 시절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기억, 부모님에게 야단맞은 기억, 연애에 실패한 기억, 10㎞ 마라톤을 완주한 기억 등.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된다. 좋았던 기억들은 기억하면 할수록 과거가 의미 있게, 내가 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반면 실패의 기억은 비관주의와 패배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기억은 상처가 되기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기억 중에 무의식의 기억과 깊은 관계가 있는 ‘암묵기억(Implicit Memory)’이 있다. 자동차 운전을 오래했던 사람이 몇 년을 쉬었다가 다시 운전대를 잡아도 운전을 잘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신체와 감각에 내재된 기억이 작동된 것이다.

세월호의 기억은 ‘집단의 암묵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다 해도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나 노란색 리본만 보아도 가슴은 다시 아플 것이다. 동일한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에겐 감정과 재능 품성 의지력 등에서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런 집단의 기억은 집단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토대가 되므로 반드시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만일 치유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픈 기억은 폐쇄된 삶에 고스란히 남는다. 말할 수 없이 큰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몸과 영혼 깊숙이 숨긴다. 문신처럼 새겨진 이 기억의 아픔은 불쑥불쑥 삶 속에 나타나기도 한다.

특별한 공간 ‘온유의 뜰’

안산시 단원구 명성감리교회는 지난 12일 ‘기억주일예배’를 드렸다. 세월호 참사 때 하늘나라로 떠난 이 교회 학생 여섯 명을 기억하는 행사였다. 김홍선 담임목사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벌인 일입니다. 기억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한다는 것이 위로의 출발이며 그보다 더 내밀한 위로는 없는 듯하다. 이 교회에 특별한 공간이 마련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세월호 희생자 고 양온유 학생의 이름을 딴 ‘힐링테라스 온유의 뜰’. 단원고 교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교회 옥상에 마련된 이 공간은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고 회복을 다짐하게 만든다. 이는 ‘당신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기억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상처의 자리에 희망을 세운 기억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아픈 기억을 공유하는 애도공동체가 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두가 겪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목회적으로 다루고 실천해야 한다. 기독교 예배의 핵심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고 인식할 때, 개인의 기억은 물론 집단의 기억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픈 기억 공유하는 공동체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이다. 이에 대해 성 어거스틴은 과거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기억해 내라고 말한다. 현재는 비록 어려움 속에 있지만 예전에 나에게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 내 삶의 고통 속에서 나를 건져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의 창고에서 불러와 새롭게 경험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신앙적 갈등과 고난을 극복하는 커다란 힘이 된다.

성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내면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리는 바로 ‘기억이라는 넓은 궁전’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되살리는 것, 기억 안에 존재하는 생각을 통해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 기억 안에서 자신의 참된 자아를 찾아 여행하는 것이 우리 삶을 회복시킨다고 했다.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가 미치는 영향력은 바꿀 수 있다.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4:9)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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