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 獨 ‘전기 아우토반’ 건설 강행에 주민들 “나인 당케” 기사의 사진
지난달 23일 독일 작센안할트주 나움부르크 시내 곳곳에 설치된 송전탑 건설 반대 표지판. 독일 정부는 동북부에서 풍력발전 등으로 생산된 전기를 전력 수요가 밀집된 남부로 보내기 위해 송전탑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극렬 반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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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트링크 나인 당케(SUEDLINK? NEIN DANKE!·송전탑 사양합니다)”

지난달 23일 오후 9시 독일 작센안할트주에 위치한 도시 나움부르크 주민회관. 어둠을 헤치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근 볼프하겐시 주민부터 카셀시에서 온 환경 운동가까지 총 300여명이 회관을 가득 메웠다.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와 학교를 마치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이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로 둘러싸인 허름한 체육관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정부의 송전탑 건설 계획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다.

모임을 주도한 우르술라 귄터(58·여)씨가 강단에 올랐다. “35년간 이곳에 살았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입니다. 왜 정부는 내가 사는 터전에 송전탑을 건설해 모든 걸 망치려 하는 겁니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귄터씨는 “주민 대부분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미관에도 나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며 “다수의 뜻을 모아 법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움부르크 인근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시위는 벌써 1년째 계속되고 있다.

◇탈원전이 낳은 송전탑 갈등=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독일은 ‘탈원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지역별로 흩어진 원전에서 전기를 생산하면 이를 관리하는 전력회사와 고객의 ‘직거래’를 통해 전기가 공급됐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원전의 부재로 인해 전력 부족이 예상되면서 정부는 북부와 동부 지방에 풍력발전소를 대거 설치했다. 공장 등 산업 시설이 집중된 남부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바람이 잘 부는 등 관련 시설이 들어서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운반’이다. 독일 정부는 동북부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력 수요가 밀집된 남부로 보내려면 380㎸의 고압 송전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독일에 현존하는 최고 전압의 송전선이다. 10억 유로(1조4000억원)를 투입해 2800㎞의 고압 송전망과 1500㎞의 기존 송전선로를 개선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Autobahn)을 따라 건설된다고 해서 ‘전기 아우토반’ 혹은 ‘쥐트링크(SUEDLINK) 프로젝트’라 불린다.

주민과 지역 기관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볼프하겐처럼 송전탑이 필요 없는 곳은 주민 반대가 더 심하다. 볼프하겐시는 화력 발전과 원전, 오스트리아에서 수력 발전을 통해 얻은 전기 등을 끌어와 썼다. 그러나 20년 전부터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발맞춰 시 차원에서 주민들의 집에 태양광 발전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등 전력 수급 부족에 대비해 왔다. 공공기관은 무조건 태양광을 설치하게 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전기료는 2배 가까이 올랐지만 시 자체적으로 필요한 전기의 30%는 태양광 발전으로, 나머지는 시 인근 4개의 풍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양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됐다. 인구가 1만3000명에 그치는 소도시라 가능한 일이다. 미하엘 요스트 볼프하겐 건축청장은 “원전이 사라지면서 비싼 전기를 쓸 수밖에 없게 돼 주민들이 이미 충분한 희생을 했다”며 “다른 주로 넘어가는 전기 때문에 볼프하겐 인근 지역이 피해를 볼 수는 없지 않냐”고 불만을 피력했다.

새로 지어질 송전탑은 80m 높이로 건설될 전망이다. 1950년대부터 원전과 화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볼프하겐으로 나르던 송전탑(30m)보다 3배 가까이 더 높다. 많은 양의 전기를 한꺼번에 운반하기 위해 높게 짓는 것이다. 볼프하겐과 나움부르크 주민들은 땅 밑으로 송전선을 깔아 달라고 정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환경 파괴를 막고 주민 삶의 질 저하를 최소화해 달라며 제시한 방안이다. 지하 송전선의 경우 8배가량 비싼 비용 탓에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하엘 건축청장은 “지역 단위로 송전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상황”이라며 “독일 정부가 지방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우는지에 따라 탈원전 정책의 향방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전 없는 독일, 어떻게 될까=송전탑 갈등은 원전이 사라지고 있는 독일이 겪는 문제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일단 폐로에 드는 비용 마련이 시급하다. 한 독일 내 원자력 전문가는 모든 원전을 폐쇄하는 데 500억 유로(58조4820억원)가 넘는 돈이 들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미 재정에 타격을 입은 전력업체들이 이를 충당하지 못한다면 나머지는 세금에서 부담해야 한다.

2050년까지 전력 비중의 80% 정도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만프레트 샤웁 환경단체 ‘에너지2000’ 대표는 “정부가 재정 부족이나 관련법과의 충돌로 인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혜택을 점점 줄이고 있는 추세”라며 “정부의 정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볼프하겐 주민은 “전기료가 너무 오르고 송전탑 갈등이 새롭게 생기는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바뀌는 게 혼란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대부분 주민들은 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안정적으로 값싼 전기만 쓸 수 있다면 원전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나움부르크·볼프하겐=글·사진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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