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오사카城에서 만난 豊臣秀吉 기사의 사진
임진왜란을 화제로 삼은 KBS 주말 드라마 ‘징비록’을 빠뜨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주인공인 류성룡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정신병자처럼 비하하는 것이 거슬리긴 하지만 동북아 세력재편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시기여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주 일본에서 도요토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오사카성은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금빛 찬란한 천수각은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볐다. 도요토미 전시물에는 16세기 말 그가 일으킨 임진왜란을 조선 ‘침략’이 아닌 ‘출병(出兵)’으로 적시돼 있었다. 도요토미가 우리 강토와 백성들을 무려 7년 동안 유린했지만 사상 처음 중국(명) 정벌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에게 불세출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수학여행 온 검은색 교복 차림의 일본 중고생들도 같은 느낌을 갖고 돌아갔을 것이다.

도요토미 행적을 살피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떠오른 건 왜일까. 이토는 19세기 말 메이지 신정부에서 초대를 포함해 네 번이나 총리직을 수행하며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다.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로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위대한 정치지도자임에 틀림없다. 도요토미와 이토는 300년의 시차가 있지만 국력을 한껏 키워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도요토미 이후 400여년, 이토 이후 10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다시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곱사등이 신세가 돼 가는 형국이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눈에 띄게 일본을 가까이하고 있다. 한국은 점차 미·일 양국으로부터 소외되는 모양새다. 미국은 과거사 문제 등과 관련한 한국의 지원 요청을 외면한 채 오히려 일본 손을 들어주고 싶어 한다. 미국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용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연상되는 걸 어쩌랴.

일본의 외교·안보 파워 과시는 노골적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짧은 기간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외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패전 후 제정된 평화헌법은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민해방군이 북한에 진입할 경우 자위대가 남한에 들어와 미군과 합류하지 말란 법도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동북아 정세가 이토록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우리 위정자들은 손을 놓고 있다는 느낌이다. 외교안보팀이 짜임새 있는 전략을 갖고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귀를 막고, 독도 영유권을 집요하게 주장하는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인다. 하기야 예나 지금이나 한·일 관계에서 외교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력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지키기 어렵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금의 우리 정치권은 사분오열돼 있다. 국익과 직결된 사안에조차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 경제적 갈등을 풀기는커녕 부추기는 게 대한민국 정치인들이다. 임진왜란이나 한일합병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침략하자 불과 17일 만에 도성을 내주고 북으로 도망친 선조는 의주 통군정(統軍亭)에 이르러 이런 시를 읊었다. ‘관산에 걸린 달을 바라보고 통곡하노라니, 몰아치는 압록강 바람에 마음 쓰리구나, 조정의 신하들아 오늘 뒤에도 또 다시, 동쪽 패니 서쪽 패니 하며 찧고 싸울 테냐.’(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1권’)

당쟁에 의한 국론분열을 뼈아프게 반성했지만 때는 한참 늦었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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