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강의’ 이후 11년…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수업 기사의 사진
세월이 아무리 지났어도 신영복 하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20년의 긴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 쓴 편지들을 묶어낸 이 책은 참담한 비극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감옥이 신영복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 있다면 동양고전이다. 신영복은 감옥에서 고전을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1988년 출소 후 성공회대에서 고전 선생이 되었다. 신영복의 동양고전 강의록은 2004년 ‘강의’라는 책으로 만들어져 그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책이 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년, 70대 중반에 이른 그가 25년간 몸담아온 대학 강의실을 떠나며 남기는 마지막 강의록이 이번에 출간된 ‘담론’이다.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 자격으로 진행해온 ‘인문학 특강’ 녹취록과 강의노트를 정리했다.

책은 동양고전 이야기와 자전적 이야기,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신영복의 동양고전 독법은 자구의 해석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문맥 속에서 메시지를 사려 깊게 탐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경’을 펼쳐들고 시가 사라진 이 시대에 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식이다.

“‘시’가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틀’이고, 시를 암기한다는 것은 시인들이 구사하던 세계 인식의 큰 그릇을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이라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합니다.”

그는 언어와 개념, 논리가 중심이 되는 문사철(文史哲)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실에 충실하되 사실을 넘어서는 ‘시적인 관점’이 세계 인식의 중요하고 심층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배적인 미디어가 된 영상서사 양식에 대해 “그 압도적 전달력에도 불구하고 인식 주체를 소외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식 주체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지적도 경청할만하다.

주역, 논어, 맹자, 순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 등을 읽어나가는 신영복 강의의 핵심은 관계론으로 모아진다. 그는 “우리는 지금 ‘관계’ 담론을 인식의 문제, 사람의 문제로 논의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관계’는 ‘세계’의 본질”이라며 “세계는 관계입니다”라고 말한다.

책 후반을 차지하는 것은 사적인 이야기들이다. 1인칭의 사적인 서술이 어떻게 인간과 세계로 나아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신영복을 읽는 기쁨이다. 처음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의 심정, 감옥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 등을 처음으로 고백한다. 한국 최고의 단편소설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빼어난 문학성을 띤 ‘청구회 추억’을 쓰게 된 사연, 서예에 대한 글 등도 만날 수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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