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명호] 肉斬骨斷 없는 정치개혁은 실패 기사의 사진
고인의 죽음과는 별도로 ‘성완종 사태’는 우리 정치개혁의 절호의 기회다. 한 사람의 죽음이 절호의 기회로 치환될 수 있다는 현실은 매우 슬프고 불편하다. 하지만 어쩌랴. 큰 사건·사고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관련 요인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내부 압력이 높아지고, 임계점에 다다르면 어떤 촉발 요인에 의해 불이 당겨져 확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촉발 요인은 작위(作爲)적일 수도 있지만, 우연일 경우도 적지 않다. 역사적인 사건·사고를 살펴보면 그렇다. 설사 작위라는 게 보태졌어도 이미 형성돼 있는 거대한 발생요인군(群)에 성냥을 그은 수준일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만 몰랐을 뿐이다.

성완종 사태는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3김 시대가 가면서 돈과 계보로 하는 정치적 적폐는 다소 개선됐다지만 성완종 사태는 정치 부패 구조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그리 크지 않은 일화일 뿐이다. 다른 어떤 분야에 비해 우리 정치와 주변부는 덜 개선됐다. 정치인 개개인 수준은 날로 떨어지는데 국회 권력은 더 세져만 간다. 정당이라는 철벽 요새를 갖춘 ‘국회의원 카르텔’이 너무 강고하기 때문이다. 그 카르텔은 여야를 불문하고, 보수·진보도 없다. 정파적, 지역적 이익에다 정치인 개인이나 주변인들의 이해관계마저 더해지고 있다. 어떤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길이 있다고 치자. 국회의원은 이 길의 중간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의 절대적 통행허가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입법과 거의 모든 정책은 여의도를 거치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권관계가 형성되고 부패가 자랄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막강한 권능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헌법기관이 비도덕적이고 부패했다면 걸러내져야 한다. 정치개혁이 당연한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개혁에 이어 사회개혁까지 언급했다. 지난해 ‘국가개조’부터 시작된 일련의 발언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사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특히 올해 들어 정치와 기업 등의 부패에 대한 사정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중대 범죄를 적발해내겠다는 방향은 맞는데 전제가 있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이다. 섬뜩하지만 정치개혁을 하겠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바로미터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다. 금품수수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수사 주체가 밝혀야 할 몫이다. 여기에 청와대나 권력이 개입했다간 될 일도 어그러진다. 사실이 드러나면 살을 베어 줘야 한다. 그런 후 정치권 부패 구조라는 뼈를 전방위로 끊어야 한다. 살을 먼저 베지 않으면 정치개혁에 한 치의 진전도 없을 뿐더러 ‘사정=정치보복’이란 비판에 시달리게 된다. 박 대통령은 이완구 총리 사퇴 표명 이후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하라”고 했고, “사회개혁에 박차를 가해 경제 재도약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다음 주 중남미에서 돌아온 뒤 자신의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정치개혁에 깊은 고민을 했다는 대국민 발표를 해야 한다. 그리고 특검이든 검찰이든 육참골단의 의지로 모든 비리의 정점에 있는 공고한 정치부패 카르텔에 손을 대도록 해야 한다. 성완종 사태는 정치부패 구조가 민심이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친절한 신호다. 4년마다의 선거는 포퓰리즘과 일부의 낮은 민도로 부패 정치인을 잘 걸러내지 못한다. 부패 구조를 청소하지도 못한다. 부패 정치인과 정치구조는 민주정치체제의 최대 걸림돌이다. 이것 해결 없이는 정치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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