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김명자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본부 공동대표] “‘웰다잉’ 제도적 인프라에 달렸다” 기사의 사진
김명자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본부’ 공동대표는 “웰빙은 웰다잉으로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 공동대표는 “우리나라는 아프면서 생을 마감하는 기간이 선진국에 비해 배나 된다”면서 “때문에 죽음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 과정을 거쳐 흙으로 돌아간다. 피하고 싶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살기도 팍팍한 현대인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사치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마음가짐은 이제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의 질'은 조사 대상 40개국 가운데 32위(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2010)에 머물러 있다.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각계의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에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본부'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발기인대회를 갖고 출범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 인사 1만4865명과 의료기관 등 80여개 단체가 국민본부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려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김명자 국민본부 공동대표를 27일 만났다. 김 대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그래서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제도화가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본부가 어떤 단체인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아직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사회적 필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고, 국민 인식도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기존 종교단체와 의료기관 등에서 호스피스운동에 앞장선 분들이 많다.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지가 있어야 하고, 죽음의 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국민본부가 발족했다.”



-과학자로서 호스피스운동에 앞장서게 된 계기는.

“나는 호스피스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다. 환경부 장관을 했다. 웰빙을 구현하는 게 임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해오다 제 나이도 나이고, 웰다잉으로 삶의 마침표를 찍어야 웰빙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불행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불행을 덜어보자는 뜻으로 호스피스운동을 시작했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면서 세상과 작별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가 절실히 필요한데 그것이 되어 있지 않다. 시민사회 차원에서 의식 전환과 함께 제도화를 촉구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호스피스운동을 하던 분들이 오랫동안 노력했는데 아직 되지 않았다. 국민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됐다.”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살고 죽는 것이 웰빙, 웰다잉인가.

“국제적으로 행복지수를 발표하는데 행복지수를 웰빙지수와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크게 공간, 자원,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갖춰져야 하고 여기에 가치관 요소를 더할 수 있다.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보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다. 웰빙은 물질뿐 아니라 정신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연명치료는 웰다잉 조건에서 벗어난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차가운 기계에 둘러싸여 고가의 검사를 받고 온갖 투약을 받았는데도 말기환자 판정을 받은 경우를 많이 봐왔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연명치료 상태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는 것은 죽음의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보다는 고통을 줄이는 완화치료를 받으며 내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운명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5세 이상 노인 1만4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8.9%가 연명치료에 반대했는데 실제는 10명 중 3명(27.8%)이 연명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에 대한 제도화가 안 돼 있으니까 의사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연명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암 관리법에 의해 말기 암 환자만 일부 호스피스병동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 비율이 매우 낮다. 암 환자의 경우 13% 미만이고, 전체 사망자의 3%밖에 되지 않는다. 제도화가 안 돼 있다 보니 호스피스병동에 가면 죽으러 간다고 생각한다.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가.

“우선 국회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법을 제정해야 한다. 호스피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를 암 외에 다른 질환 말기 환자로 확대하는 게 하나고, 시설을 만드는 게 또 하나다. 지금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하다 임종을 맞게 되다보니 중환자실 병상 하나당 매년 8000만∼1억원 적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가고 있어 죽는 인구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완화의료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에서 완화의료비를 부담해줘야 한다. 말기 환자 돌봄의 질도 대단히 중요한데 간병비도 건강보험에서 부담해야 이 제도가 잘 정착될 수 있다.”



-그러려면 꽤 많은 예산이 들 것 같다.

“현 체제보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도입될 경우 건보 재정이 더 절감된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그렇다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 89%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고 싶어 하는데 이 바람을 들어줄 의료 인프라가 깔려 있지 않다. 국회에서도 여러 번 입법을 시도했는데 안 됐다. 그래서 이번엔 그야말로 종교·시민단체까지 힘을 모으고, 각계각층 힘을 실어서 결실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논란이 많으면 국회도 손대기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이냐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그 몫을 국민본부가 할 생각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나라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김 대표 생각은.

“이 자리에서 존엄사를 규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 존엄사법이 국회에 제출된 적이 있는데 통과되지 않았다. 좀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다하려고 해선 안 된다. 단계를 거치다 보면 본격적으로 논의될 시점이 올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보는데 연명치료를 한번 시작하면 현행 법 체계에서는 중단하기 어렵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법적으로 완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까딱하면 의사의 살인방조죄가 성립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 연명치료와 호스피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단 연명치료를 받으면 보호자나 가족들이 중단 의사를 밝혀도 불법이기 때문에 의사가 함부로 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이것은 모순이다.”



-의학 지식이 거의 없는 자식들 입장에선 완화의료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다. 우리가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명(餘命)기간을 혼자 고립돼 기계장치에 둘러싸여서 보내느냐, 아니면 가족들이나 보고 싶은 사람 만나서 오순도순 얘기하면서 보낼 거냐의 선택이다.”



-의료진이 정확하게 판정을 해줘야 가족들이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데.

“우리가 추진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에 그런 문제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암 환자는 말기 판정이 비교적 쉬운데 다른 질환으로 확대하는 경우 그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의료계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하고 있는 제도인데 우리나라가 못할 이유는 없다.”



-올해 안에 가시적인 입법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는가.

“그게 우리의 목표다. 내년에 총선도 있고 해서 금년에 꼭 성과가 나타나길 바라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시민운동 차원에서 국회의 입법활동을 지원, 지지할 것이다. 국회와 공동으로 공청회와 세미나, 토론회를 개최해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생각이다. 국민본부를 재단으로 전환할 계획도 갖고 있다.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시민사회단체의 피드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재단 설립 여부와 상관없이 시민운동으로 유지되고 확대돼야 한다. 설령 법과 제도가 갖춰졌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시행 과정에서 얼마든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시민운동으로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9988234’를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고 편하게 저세상으로 가자’는 뜻이란다. 만난 사람=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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