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1부)] “유럽에 하나뿐인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한국 정신문화 교육”

(제1부) 한국교회와 독립운동-⑩ 네덜란드 (下) ‘이준 열사 기념관 운영, 이기항 장로 부부’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1부)] “유럽에 하나뿐인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한국 정신문화 교육” 기사의 사진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왼쪽)과 송창주 이준 열사 기념관장은 네덜란드 헤이그 기념관 앞에서 "이준 열사 기념 사업을 통해 조국에 봉사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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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 와건스트라트 124번지. 이곳 '이준 열사 기념관(Yi Jun Peace Museum)'은 이 열사가 108년 전 숨을 거둔 '드 용 호텔'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유럽에 하나밖에 없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인 이곳 기념관에 들어가려면 철문을 열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 열사가 오르던 그 계단이다. 2층에 올라서자 정면에 이 열사의 흉상이 보였다. 빛바랜 태극기도 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탁자와 침대가 있는 객실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이준 열사가 돌아가신 방입니다.” 기념관 설립자인 이기항(79) ㈔이준아카데미 원장이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눈을 감아야 했던 이 열사의 마지막 거처를 담담한 어조로 소개했다.

이 원장은 아내 송창주(76)씨와 함께 사비를 털어 1993년 이 건물을 매입한 뒤 95년 기념관을 개관했다. 이 열사가 묵었던 당시 호텔방을 재현하기 위해 전문가 고증을 거쳐 탁자와 전화기, 침대 등을 설치했다. 과거 객실로 사용하던 4개의 방에는 1907년 4월 고종황제가 이 열사에게 수여한 헤이그 특사 신임장 등이 전시돼 있다. 대부분 모조품이지만 1907년 만국평화회의 현장을 보도한 ‘평화회의보’와 이 열사의 비석, 이 열사의 자필 이력서 등은 진품이다.

기념관 3층에도 4개의 방이 있는데 이 열사와 함께 헤이그 특사로 활약한 이상설 이위종 선생을 기념하는 전시실로 꾸며 놨다. 호텔식당, 카페, 당구장 등으로 사용되던 1층에선 현재 기념관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무원, 군인, 학생, 배낭여행자, 북한 주재원 등 지난해에만 3500여명이 기념관을 방문했다.

이 원장은 한국수출진흥주식회사 주재원으로 네덜란드 시장개척을 위해 72년 이곳에 왔다. 76년부터 18년간 무역회사를 운영했고, 80년에는 암스테르담 화란한인교회도 세웠다. 네덜란드 한인회장을 역임한 그는 현재 은퇴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가 이 열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8년 서울 상동교회에서 열린 ‘이준 열사 추모식’에 참석하면서부터다. 92년 7월 우연히 지역신문에 실린 네덜란드 역사학자의 이 열사 관련 글을 접하고 기록을 뒤져 ‘드 용 호텔’을 찾아냈다.

이 원장은 가족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 열사가 순국한 역사적 건물을 매입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헤이그시 소유였던 건물 매입은 쉽지 않았다. 1층에서 60년 넘게 운영되던 당구장과 2∼3층 입주민을 퇴거시키려면 법적 문제를 풀어야 했다. 이 원장은 옛 호텔 건물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담은 장문의 편지를 헤이그시청에 보냈고 시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건물을 매입했다.

기념관 관장은 아내 송씨가 맡고 있다. 이 원장은 이준아카데미를 통해 이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알리고 있다. 이준아카데미는 매년 해외 한인학교 학생 등을 초청해 ‘잊지 말자 을사늑약’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이곳은 조국을 사랑하는 60만 유럽 한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라면서 “나라사랑, 정의·평화를 교육하는 한국 정신문화의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93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3년 KBS 해외동포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송 관장은 이 열사의 사망증명서에 ‘의문사’로 표기돼 있다며 항간에 떠도는 자살설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열사가 사망한 7월 14일은 주일이자 프랑스혁명 기념일이었다”면서 “이 열사가 만약 대한독립을 외치며 할복자살을 시도했다면 낮에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열사가 만국평화회의장 등 공개 장소도 아닌 호텔방에서 오후 7시 사망했다는 것은 자살설에 설득력이 없음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송 관장은 “이 열사 사망 5일 만에 일본 외무부장관이 고종황제를 퇴위시켰다”면서 “그때부터 광복까지 전개된 독립운동 40년사의 시작은 이준 열사의 죽음이었으며, 이 열사의 죽음이 어떤 이유든 독립운동에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이 원장 부부는 20년 전부터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이곳을 지킨다. 오전 8시50분 암스테르담 자택에서 출발해 버스와 기차를 타고 60㎞를 달려 헤이그에 도착한다. 10시30분 기념관 문을 열고 오후 5시30분에 문을 닫은 뒤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왕복 120㎞ 거리를 매일 3시간씩 오가는 것이다. 기념관 운영비는 모두 이 원장 부부가 부담한다. 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행사를 치를 때만 한국 정부의 보조를 받을 뿐이다.

이 원장은 “이 열사 기념사업은 우리 부부에게 여생의 보람이자 힘겨운 십자가”라면서 “이 사업을 통해 조국에 봉사하고 평화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나 우리 부부 인생의 연한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 길을 계속 걸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이그=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프로젝트는 국민일보·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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