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불가사의한 선거 기사의 사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틀렸다. 적어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완패한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선 그렇다. 이번 선거를 관통한 키워드는 ‘성완종’이었다. 그가 비극적 삶을 마무리하면서 남긴 ‘말’과 ‘리스트’였다. 여기엔 정경유착의 은밀한 뒷거래 의혹들이 가득하다. 리스트에 오른 이완구 총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 권력비리 의혹이 터졌으니 여당엔 초대형 악재임이 분명했다.

이런 때 치러진 선거에선 십중팔구 여당이 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처절할 정도로. 하지만 4·29재보선 결과는 그 반대였다. 현직 총리와 박근혜정부 1·2·3대 대통령 비서실장 등 권력 핵심이 줄줄이 연루된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승리하고 부패를 심판해 달라는 야당은 전패했다. 더구나 선거가 실시된 네 곳 가운데 인천 서·강화을을 제외한 서울 관악을, 광주 서을, 경기 성남 중원은 19대 총선에서 야당 의원이 당선된 곳이었다.

새누리당은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승리한 광주 서을을 뺀 세 군데에서 박빙의 승부를 예상한 언론 분석이 무색하게 여유로운 승리를 챙겼다. 아무리 민심이 천심이라지만 불가사의하다. 대통령의 업적도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고, 지지율이 반등 추세에 있는 것도 아닌데 몇 번을 곱씹어 봐도 여당의 압승 요인을 쉽게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작가 박민규는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진보는 분열로 망해도 보수는 부패로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의 분석은 이렇다. “분열에는 의리가 없지만 부패에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마지막 남긴 육성에 유달리 의리를 강조한 게 오버랩되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의 의리’ 말고는 딱히 여당의 승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부패한 보수가 그래도 진보보다 낫다는 보수세력의 맹목적 결집이 여당 승리를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는 다시 한번 ‘참’으로 증명됐다. 서울 관악을에서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득표율 34.20%)와 무소속 정동영 후보(20.15%)가 얻은 표를 합하면 새누리당 당선자의 득표율(43.89%)을 훨씬 웃돈다. 산술적 계산으로만 보면 ‘정동영 불출마=정태호 당선’ 공식이 성립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관악을 선거엔 또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철새정치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다. 대통령 후보로 키워준 모태를 버린 선택은 이때까지의 자신의 정치행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이율배반이다. ‘담대한 진보의 실현’이라는 탈당의 변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에 다름 아니다. 애초 원칙도, 명분도 없었기에 정동영의 몰락은 필연의 수순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4·29재보선을 포함해 총 여섯 번의 크고 작은 선거가 치러졌다. 2013년 4·24, 10·30 재보선과 2014년 6·4 지방선거, 7·30, 10·29 재보선이다. 이 중 기초의원 2명만 뽑은 10·29재보선을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지방선거와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고 얘기한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현 여당엔 무덤이 아니라 요람으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이렇게 정권에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국정을 이끄는 박 대통령은 참으로 행복한 대통령이다. 헌정사상 이런 대통령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불가사의다. 이번 선거는 결과만 놓고 보면 진정한 민심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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