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명품마을을 가다-장생포발전협의회 김병관 회장] “낙후돼온 고향  다시 태어나는 기분” 기사의 사진
“상업포경 금지 이후 낙후돼 온 고향이 다시 태어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동안 생계를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쓸쓸해져가는 고향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김병관(61·사진)씨는 장생포발전협의회장과 장생포 마을기업 이사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그는 장생포 토박이다. 장생포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런 열정 덕에 발전협의회장을 세 번이나 연임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왔다. 장생포발전협의회는 2005년 장생포부녀회와 청년회 등 10여개 모임을 모아 만든 마을 봉사단체다. 협의회는 장생포 주민 1374명이 회원이고 대의원은 50여명이다.

김 회장은 “포경이 금지되기 전인 1986년에는 장생포의 유일한 초등학교에 학생 2000여명이 있었지만 현재는 30여명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장생포가 고래로 부자도시였을 때를 회고했다.

그는 “부친도 고래잡이배를 탔고 나도 19살 때부터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 10여년간 배를 탔다”며 “그 당시 장생포에 고래잡이 어선이 20여척 있었는데 고래를 연간 2000마리 정도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당시에는 고래와 관련해 배 만드는 사람, 배 고치는 사람, 고래 손질하는 사람, 고래 유통하는 사람 등 모든 주민이 고래 때문에 먹고살았다”면서 “정말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러나 포경이 금지된 이후 어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울산 앞바다에서 나는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나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인근 공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며 삶을 꾸려나가다 결국 마을을 다 떠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자동네로 울산의 중심이던 고향 장생포가 점점 잊혀져가는 걸 보며 늘 마음이 착잡했다”고 회고했다.

장생포는 2005년 장생포에 고래박물관을 준공하면서 서서히 관광마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현재는 주말과 주중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마을에 와서 고래박물관, 고래크루즈, 고래생태체험관 등을 코스로 보고 돌아간다.

“고래고기 없는 고래관광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음식문화로서 고래고기가 인정됐으면 합니다. 장생포에서 먹고살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면 그저 관광객들이 왔다 가는 동네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상업포경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울산=조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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