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석] 큰 꿈 심어준 한·미원자력협정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 도입 당시 우리는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자본이나 기술이 전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잘살아보자’는 여망과 에너지 자립이라는 꿈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원자력발전소는 꿈과 희망의 결집체였다. 어렵사리 차관을 들여와 고리 1호기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미국 전문가가 건설하고 우리는 단순 업무를 했다. 아무런 기술력이 없던 터라 미국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가 얼마 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타결했다.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는 사용후 연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원전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는 데도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특히 고위급 위원회를 상설화해 산하에 실무그룹을 두고 한·미 원자력 협력의 제반 사안을 상시 협의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한 것은 큰 소득이다. 협정 기간도 기존에 41년이었던 것을 20년으로 단축시켜 환경 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원자력 안전 관련 연구·개발 협력과 사용후 연료 관리 기술도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경유해 미국산 장비와 부품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도록 포괄적 장기 동의를 확보하고 수출입 인허가를 보다 신속히 하도록 명시한 것 또한 협상의 성과다. 당장은 아니지만 원전 기자재 수출뿐 아니라 제2의 원전 수출에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에 수출한 원자력 기자재와 이를 이용해 생산된 핵물질이 우리나라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이번에 협상이 타결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핵 비확산 노력과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이익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은 덕분이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지난해 3월 만료 예정이었고 2년 연장하면서까지 진통을 겪어 왔다.

돌이켜보면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어 왔다. 저렴한 전기요금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가능케 한 에너지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미 원자력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이 매우 큰 역할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번에 호혜적이고 대등한 파트너 관계로 협정을 타결하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미국의 일방적 통제권만 규정되어 있던 협정 체제에서 완전히 탈피, 상호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원전산업의 높아진 위상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원전 기술을 쉼 없이 개발하며 OPR1000과 APR1400을 만들어냈고, 유수의 원전 강국들을 제치며 UAE에 원전을 수출해낸 그간 노력이 이번에 빛을 발한 것이다. 얼마 전 APR1400은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사전 심사를 통과해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지 않았는가.

벌써부터 20년 후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할 날이 고대된다. 그때가 되면 우리 원전의 위상이 한층 높아져 더욱 대등한 위치에서 협정에 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오늘날의 원전 강국을 일궈낸 저력과 잠재력을 발휘하면 할 수 있다. 원자력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연구진이 머리를 맞대고 원자력발전소를 더욱 안전하게 운영하면서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면 세계 최고의 원전 강국은 결코 요원한 꿈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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