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이영주 중국정경문화연구원 이사장 “美·中 눈치만 보지 말고 능동적 외교 펼쳐야” 기사의 사진
이영주 중국정경문화연구원 이사장이 한·중 관계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대중국우호협회’를 신설하고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전문가들을 두루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 내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는 그는 중국과의 관계 진전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알고 끝까지 공헌하겠다고 말했다. 최종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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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중국 국영 CCTV와 베이징TV, 인민일보 등에 한 한국인이 주요 뉴스로 등장한 적이 있다. ‘베이징대 최초의 한국인 박사’ 이영주(73) 중국정경문화연구원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베이징TV는 54세였던 이 이사장이 박사학위를 받기까지의 삶을 시리즈물로 방영하기도 했다. 박사 논문은 ‘중국 신외교 전략과 한·중 관계’를 주제로 중국의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덩샤오핑 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베이징대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가 중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50여년 전 성균관대 중문학과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그는 경제학에 관심이 있었으나, 8남매 가운데 중국을 공부하는 자식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아버지가 중문학과로 바꿔 입학원서를 접수시켰다고 한다. 고려 후기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원나라 과거에 급제한 목은(牧隱) 이색이 19대조라는 점이 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한·중 관계를 되돌아보면 아버지의 선견지명은 탁월했다. 이어 그는 대학재학 중에 대만 국립정치대로 유학 가 외교학을 공부했다.

베이징대 석좌교수이기도 한 그는 요즘도 두 달에 세 차례 정도 중국을 방문한다. 1년에 두 달쯤 중국에 체류하는 셈이다. 학계와 정계, 관계에 두루 포진돼 있는 중국 내 지인들과의 친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가 신뢰를 다져온 지인들은 중국 정부 고위층부터 일반인들까지 폭이 넓다. 그래서인지 한국보다 중국에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50주년인 1999년 중국 경제일보가 선정한 ‘중국통 5인’에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되기도 했다. ‘1세대 중국 전문가’인 그를 만나 한·중, 중·일, 북·중 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중국과 수교한 지 23년이 흘렀다. 한·중 관계를 평가해 달라.

“양국 수교 이후 박근혜정부와 시진핑정부가 제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익에 뭐가 도움이 됐는지 다시 점검해 좀 더 섬세한 패러다임을 짜 중국과 접촉해 나간다면 중국도 더 호의적으로 대할 것이다. 현재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도 보다 진전되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나 일본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정부 차원의 가칭 ‘대중국우호협회’ 같은 걸 만든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중국 측 인사들을 만나 보면 ‘정부를 대신해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긴요한 얘기를 나눌 수 없다’는 말을 한다. 대(對)중국 ‘창(窓)’을 만들어야 한다. 양국이 비밀리에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고, 장기적인 전략을 짜야 할 때다. 중국에는 ‘전국우호인민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그 산하에 중·한, 중·일, 중·미 분야별 조직이 있다. 가칭 ‘대중국우호협회’를 신설하면 중국의 ‘전국우호인민협회’와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중국 공산당이 막강한 만큼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중국 전략기구를 설치해 공산당 대외연락부와 꾸준히 접촉해 나간다면 미묘한 사안들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본다.”

-중국 전문가들 현황은.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한국인이 1080명이다. 그 안에 인재들이 많다. 60% 정도가 인문계통의 대학 교수나 강사로 일하고 있다. 7∼8%는 정당이나 정부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자영업을 하거나 중국 기업에 취업한 경우 등이다. 정부가 이들을 활용하지 않고 있어 매우 아쉽다.”

-중국으로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이 유의할 점이 있다면.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기업 관련 규정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상태다. 중국의 규제 규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필수다. 아울러 중국은 56개 소수 민족으로 이뤄진 나라다. 지역마다 언어, 습성, 신체조건이 다르다. 지역별 특성을 파악한 뒤 공략해야 성공률이 높아질 것이다. 또 중국 시장은 15억명이 아니다. 구매력이 있는 이들은 2억5000만∼3억5000만명이다.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중국은 화학, 철강, IT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거의 다 따라왔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이제 문화·예술 쪽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엔터테인먼트 등 문화·예술 분야는 한국이 우세하고, 장래성도 있다. 그러면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고, 양국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 교류는 중국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미·일 신(新)밀월시대를 계기로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이 격돌할 소지가 커졌다는 분석이 있다. 중·일 관계를 전망해 달라.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더 가까워질 것이란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은 얼마 전부터 일본과 언더테이블로 협상해 왔다. 중국 외교부장을 지낸 탕자쉬안 중일우호협회 회장이 얼마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또 일본을 관광하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물밑대화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중국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겉으로는 강한 프라이드를 나타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실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것이 중·일 관계의 현주소다.”

-한·일 관계는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한·일 관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과거사 문제와 경제·정치적인 분야를 나누는 게 맞다. 과거사 문제가 중요하지만, 경제·정치적인 측면도 매우 중요한 시기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 속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등에 업고 중국과 협상하면 중국이 우리를 만만하게 여기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과 미국의 눈치를 너무 본다. 눈치 보지 말고 오로지 국익을 위해 액션을 취한다면 중국은 물론 미국도 우리에게 불평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의 경우 한국은 진즉 중국에 가입하겠노라고 답했어야 했다. 그렇게 이니셔티브를 잡은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문제의 경우 미국과 공조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하면 중국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두 나라 모두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국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참된 외교는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 항상 수비만 하면 결코 이길 수 없다. 한국도 맞대응할 카드를 갖고 있다. 때에 따라선 우리의 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것이 국익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수동적 외교에서 벗어나 능동적 외교를 펴야 한다. 아울러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해야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며, 중국과의 실질적인 관계가 깊어져야 미국이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외교관 양성 방법에는 문제가 없는지.

“우리 외교관들은 순환보직이 원칙이다. A라는 곳에서 근무했으니 이번에는 B라는 곳으로, 거의 기계적으로 옮기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 일본의 경우엔 전문가들을 길러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고 특수한 국가에는 특수한 방법으로 전문가를 키워야 옳다고 생각한다.”

-요즘 북·중 관계가 틀어졌다고들 하는데,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여전하다고 보나.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없는 게 아니다. 행사하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중국 입장에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카드를 모두 보여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분명히 갖고 있다.”

-카드를 보여줄 때가 아니라는 의미는.

“중국이 미·일·러 등 한반도 주변국들에 자신이 갖고 있는 대북 지렛대를 다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중국 내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공부를 하면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을 관리해 왔다. 중국인을 만나면 편지를 보내 내가 누구인지 다시 인식시키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면 한국과 연결도 시켜줬다. 내 고향 충북 청주가 중국 유학생이 가장 많은 도시로 꼽히는 것도 중국 지인들과 꾸준하게 접촉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나 원자바오 전 총리를 수차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노력 덕분일 것이다.”

-최근에 장학재단을 설립했는데.

“지난해 ‘이영주한중인재양성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 있는 중국 유학생 10명과 중국에 있는 한국 유학생 10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중국 유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수여식은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거행됐다.) 대기업들이 중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경우는 간혹 있으나 개인이 주는 건 처음이다. 장학생들이 계속 늘어나 먼 훗날 한·중 관계의 주춧돌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장학재단을 운영 중이다. 장학금만 주고 마는 게 아니라 멘토 역할도 할 생각이다.”

-중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데.

“대만 국립정치대학으로 유학을 갔으나 강의 내용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배운 중국어가 엉터리였다. 고민 끝에 국립정치대 안에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부설초등학교 2·3학년 국어과정만 1년8개월 동안 공부했다. 교장 선생님을 수십 차례 찾아가 간곡히 요청해 허락을 받아내 어린 학생들과 함께 중국어를 배웠다. 그 이후 중국어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꿈이 있다면.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을 이뤘다. 이후 2003년 세운 중국정경문화연구원을 통해 중국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알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한·중 양국관계 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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