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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박용천]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이

가정은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현장… 재충전이 가능한 진정한 베이스캠프

[청사초롱-박용천]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이 기사의 사진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며 결혼의 계절이다. 주말에는 몇 군데씩 축하하러 다니느라 바쁜 요즘이다.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인생의 과제와 의미를 느껴보기도 한다. 결혼에는 종족보존이라는 생물학적인 의미도 있지만 더불어 심리적으로 부부라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과 가족이라는 소중한 집단을 잘 이끌어가야 할 책임도 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혼자서 가려운 자기 등을 마음대로 긁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도 한다. 결혼은 부부가 가려운 등을 긁어줄 수 있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시발점이다. 어렸을 때는 등을 긁어줄 수 있는 사람이 부모였지만 결혼하면 배우자에게 가려운 등을 내민다. 이렇게 안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문제가 해결되는 즐거운 경험은 부부와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편, 등을 긁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마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인데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채고 느끼는 사람들을 일컬어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들은 감정이 긍정적으로 잘 발달되어 마음의 가려운 곳도 잘 긁어준다.

감정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양육에 의해 발달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타고난 기질이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양육 과정에서 이러한 감정을 긍정적으로 잘 발달시켜 공감능력을 높일 수 있다. 보통 0∼3세의 기억은 그 사람의 핵심감정으로 자리 잡는데 그것이 평생을 따라다니고 일거수일투족에 그런 감정이 묻어나온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 울 때 젖을 주고, 기저귀가 축축해서 울 때 갈아준다면 아이는 ‘아! 세상은 살 만한 곳이구나. 내가 원하면 이루어지는구나’라는 긍정적인 초기 감정을 갖게 된다. 만약 반대의 경우로 배가 고파 우는데 기저귀를 갈아주고, 기저귀가 축축해서 우는데 젖을 물린다면 아이에게 ‘세상이란 소통이 안 되는 불편한 곳’이라는 부정적인 초기 감정을 심어주게 된다. 이러한 초기 감정이 그 사람의 감정의 뿌리인 핵심감정을 형성하게 되고 이 때 부모가 아이에게 얼마만큼 공감을 해주었는지에 따라 아이의 공감능력도 발달하게 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잘 관찰했기 때문에 나온 조상들의 지혜다. 여기에 정신건강의 비결이 숨겨져 있다. 어릴 때 이런 ‘즉각적인 적절한 반응’이 제공되면 아이는 행복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공감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이 평생의 정신건강을 좌우한다. 공감을 받아본 아이만이 다른 사람을 공감해줄 수 있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이 등을 긁어달라고 할 때 성의껏 잘 긁어주면 아이들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부부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육체적인 가려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가려움도 잘 찾아서 긁어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 가정과 사회는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사회적인 스트레스로 행복지수가 낮은 대한민국이지만 가정 내에서라도 가족간의 화목을 다져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안전한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2002년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초체력을 기르는 훈련을 튼튼히 해 4강 신화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는 신혼부부들에게는 결혼이라는 시점이 자신들의 긴밀한 대인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0∼3세 이후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다. 그리고 또한 자손을 공감능력이 발달되게 키워낼 의무가 주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신뢰의 기초를 튼튼히 한 가정이야말로 사회생활에 지친 가족들이 힘을 재충전할 수 있는 진정한 베이스캠프다.

박용천(한양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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