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가계 빚 리스크 은행도 나눠 져야 기사의 사진
가계빚이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란 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규모, 증가 속도, 질적 악화 정도가 이미 ‘감당불가’란 분석이 이곳저곳서 제기된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지난 3월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가계빚 위험국’으로 꼽았다.

빚이 많아도 갚을 능력만 되면 괜찮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고민이 깊다. 가계가 1년 동안 번 돈에 비해 빚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자금순환표상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빚 비율은 지난해 이미 164% 수준이다. 미국의 113%는 물론 금융위기 위험 국가인 스페인의 130%도 훌쩍 넘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은 최근 “가계부채가 임계치에 육박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가계빚의 특징은 전체의 60% 정도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통한다는 것이다. 올 1분기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2012년과 2013년의 연간 규모와 맞먹을 정도로 폭증했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주택담보대출이 걱정스러운 것은 가혹할 정도의 책임을 채무자가 일방적으로 떠안아야 된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처럼 리스크가 변수가 아니라 상수인 상황에서 채무자는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리 인상이 사실상 예고된 상태인 데다 실업에 따른 고정수입 상실 현상은 확산되고, 과도한 부동산 경기 띄우기후유증에 따른 집값 하락 가능성이 상존하는 현실은 위태위태하다.

채무 불이행의 대가는 혹독하다. 은행은 곧 담보로 설정한 집에 대해 경매 절차를 밟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상환청구권으로도 불리는 ‘소구권’을 행사한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고 집값이 상환액 밑으로 떨어지면 집 이외 다른 재산과 월급 등을 압류한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담보로 잡은 집에 대해서만 상환 책임을 지우는 것과 다르다. 미국의 일부 주는 생애 첫 주택은 경매 처분을 하지 않을 정도로 은행 스스로 위험을 떠안는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한편으로 이제는 가계빚에 대한 은행의 책임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연간 조 단위의 순이익을 버는 거대 은행은 피해에서 완벽히 배제되는 금융 시스템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에서 ‘책임분담 부동산담보대출’이란 대안을 제시했다. 집값이 내리면 은행도 어느 정도 손실을 같이 안는 등 채권자와 채무자가 위험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마련한 ‘도드-프랭크법’을 통해 금융사가 의무적으로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조사하도록 했다. 단순히 담보가 있다고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은행의 대출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은행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점차 바뀌고 있다. 새누리당 함진구 의원은 지난 3월 30일 은행이 주택 담보물 이외 추가 상환 요구를 할 수 없도록 한 유한책임대출(비소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채권자의 책임은 도외시된 이른바 ‘약탈적 금융’에 제동을 건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가계 빚은 ‘쌍방과실’이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와 수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선 은행들 모두 그 뇌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이유는 채무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빚을 받아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계 빚과 은행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된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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