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 에너지 정책 ‘롱텀플랜’이 국민 신뢰의 비결 기사의 사진
올킬루오토에 건설 중인 3호기 원전 터빈실 내부. 원전 사업자인 TVO사는 건설 중인 올킬루오토 3호기 내·외부 사진을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올킬루오토 3호기는 핀란드에서 3세대 원전으로 설계되는 첫 번째 원전으로, 설계 재수정과 안전 점검을 다시 거치면서 예정했던 공기를 넘겨 10년 가까이 건설 중이다. TVO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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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땅은 단단한 암반지대로 이뤄져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과 같은 다른 북유럽 국가와 달리 지형도 평평하다. 에너지 자원 측면에서는 지하자원이 없고, 물의 낙차를 활용해야 하는 수력발전도 여의치 않은 빈국인 셈이다. 그래서 핀란드는 국내 사용 전력량의 3분의 1가량을 스웨덴과 러시아 등 주변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수입하는 전력 외 필요량은 나무에서 비롯된 목탄 등을 재활용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비롯한 무탄소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과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아래 원자력과 신재생 에너지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신재생과 원자력의 공존에는 원전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다는 신뢰가 전제된다. 30∼40년 앞을 내다보고 수립하는 에너지 정책과 엄격한 안전규제·관리, 원전 사업자의 투명한 운영, 그리고 합리적 시민의식의 4박자가 핀란드 원전 정책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내고 있다.

◇민주적 결정을 존중하는 시민의식=핀란드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원전 정책 전반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2002년부터 건설 작업이 진행돼온 올킬루오토 3기는 물론 향후 건설계획만 통과된 올킬루오토 4기와 한히키비 1호기에 대한 정부 결정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국민 여론이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10일 원전 공기업인 티비오(TVO)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고 이전 70%를 넘었던 핀란드 국민들의 원전 수용성은 후쿠시마 사고 직후 5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2014년 10월 현재 59% 수준까지 회복된 상태다. 그러나 정부 정책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탄소에너지 감축과 독립적인 에너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22일 헬싱키 시내에서 만난 리니 하르마이넨(26·여)씨는 “우리는 후쿠시마보다 훨씬 가까운 체르노빌 사고도 간접 경험했다. 원전이 반갑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자립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탄소에너지는 더 나쁘다고 생각하기에 당분간은 원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反)원전 주의자인 토마스 후르드(51)씨도 “핀란드 미래세대를 위해서 더 이상의 원전은 반대한다”면서도 “이미 지자체 의결, 정부 결정, 의회 의결까지 통과된 기존의 결정사항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고 동의했다.

◇롱텀플랜(장기 계획)이 신뢰의 비결=결정을 존중할 수 있는 시민의식은 장기적 안목에서 세워진 에너지 정책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난달 21일 헬싱키에서 만난 핀란드 고용경제부 리쿠 후투넨 에너지 국장은 정부 정책에 대한 핀란드 국민들의 신뢰 비결을 묻자 주저하지 않고 “30∼50년 정도 기간을 내다보며 신중하게 세운 에너지 정책을 분명하게 지켜온 덕분”이라면서 “사용후 핵폐기물 문제만 해도 우리는 원전을 건설할 당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후투넨 국장은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돼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이미 예정된 원전 건설 계획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약속은 지켜지는 게 신뢰의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유럽연합(EU)의 신재생 에너지 목표치인 38%를 달성한 핀란드가 원자력 비중을 줄이지 않는 이유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후투넨 국장은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함께 원자력 발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규제=핀란드의 원전 안전규제 절차는 세계적으로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한국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핀란드의 방사선 및 원자력안전청(이하 스툭·STUK)은 원전 건설 계획 단계에서부터 건설 허가, 운영 허가 등 단계마다 독립적인 안전 검증을 실시한다. 검증 단계마다 지역주민들의 의견 수렴, 의결 과정도 동반된다. 자연스레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뤄지는 것이다. 스툭의 원자력발전소 규제 지침인 ‘YVL 가이드’ 역시 철저한 안전 규제의 대명사로 꼽힌다. 매년 강화되는 규제 내용은 이 가이드에 반영돼 각 원전 현장에서 활용된다.

원자력 시설에 대한 안전 규제를 중시하는 핀란드에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은 거의 논란이 되지 않고 있다. 30∼40년씩 설정된 설계 수명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툭의 원자로·안전담당 책임자인 리스토 사이라넨씨는 “핀란드에서는 설계 수명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보통 정부가 10∼20년간 운영권을 허가해주지만, 10년마다 스툭의 안전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규 원전 건설과 가동에 대한 허가권은 정부가 가지고 있지만 일단 건설된 원전의 보수, 시설 변경 등에 대한 허가권은 스툭이 독점하고 있다. 사이라넨씨는 “안전 허가는 새로운 운영허가를 받는 만큼 철저하기 때문에 이를 통과하기 위한 재투자 여부가 문제일 수는 있지만, 노후화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와 공생하는 원전사업자=핀란드에서는 특히 원전 지역에서의 원전 신뢰가 높다. 정부와 규제기구뿐 아니라 원전 사업자가 직접 지역사회와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어서다. 핀란드의 발전소는 해당 지역의 회사, 공장, 지자체 등이 직접 투자해 설립하는 형태여서 지역사회의 요구에 훨씬 민감한 측면도 있다. 핀란드 내 전력의 17%를 생산하는 올킬루오토의 TVO사 역시 자사에 투자한 주주들에게 전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킬루오토 주변의 에유라요키, 라우마 등의 지역사회와 보다 긴밀한 소통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는 비상대응 훈련도 원전 사업자나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 사회 주도로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원전사업자는 주체가 아닌 지원자로서 동참하는 수준이다. 파시 투오히마 TVO 대변인은 “우리는 원전 운영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면 지역주민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는 철저히 뒤에서 지원하고 지역사회의 의구심과 우려를 풀어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헬싱키·올킬루오토=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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