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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하응백] 공연과 문화역량

[청사초롱-하응백] 공연과 문화역량 기사의 사진
소설가 김연수는 2013년 실크로드를 종주하면서 쓴 기행문에서 이란의 서사시 ‘쿠시나메’를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쿠시나메는 11세기 무렵 하킴 이란샨이라는 사람이 쓴 서사시다. 이 작품은 페르시아 왕족의 권력 다툼이 주된 내용인데, 그 와중에 왕족인 업틴은 권력다툼에 패해 중국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뱃길로 한 달은 가야 나오는 테이후르왕이 다스리는 바실라(Basila) 도착한다.

바실라가 어떤 나라일까? ‘바(ba)’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더 좋은’의 의미이고 따라서 바실라는 ‘좋은 신라’라는 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11세기라면 신라와 서역의 교류가 활발한 지 한 참 뒤니까, 신라라는 국호가 페르시아 지역에는 당연히 알려졌을 것이다. 이 이름이 더 알려졌다면 지금 세계인은 우리나라를 코리아가 아니라 바실라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쿠시나메의 상상력은 대단히 유쾌

이 서사시에는 바실라에 도착한 업틴이 바실라 공주인 파러나크와 결혼해 어부의 도움으로 14개월 동안 배를 타고 이란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 역사의 기록 혹은 민담이나 전설에도 한 귀퉁이 정도는 나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쿠시나메의 신라 부분은 판타지라 해도 무방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연수도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작가적 상상력이 신라의 공주를 사막과 바다 건너 페르시아 땅까지 데려온 것”이라고 추정한다. 쿠시나메의 신라 이야기가 허구라고 해도 그 상상력은 대단히 유쾌하다. 인도 아유타국 공주가 가야의 김수로왕에게 시집왔다면, 신라의 공주가 페르시아로 시집 못 갈 이유도 없다.

이런 문학적 상상력은 후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새로운 판타지를 탄생하게 만든다. 지난 4월 경주 엑스포공원에서 관람한 ‘바실라’라는 무용극도 이란의 쿠시나메를 응용한 것이었다. ‘해양판타지 액션 춤 활극’이라는 다소 장황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선전 문구를 붙여 놓은 이 공연은 무대장치나 효과, 세트 같은 것이 웅장하고 화려하고 최첨단이어서 보는 내내 시각을 압도했다. ‘난타’ 같은 ‘넌 버벌(non-verbal)’ 형식을 갖고 있는 점을 생각하니 제작진의 고민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녀노소 모두가, 언어가 다른 전 세계인 모두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말이 필요 없는 글로벌 문화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제작자인 정동극장으로 하여금 이런 형식을 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모든 것의 원천은 문학일 수 있어

이제 말로 먹고살았던 문인들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엉뚱한 고민을 하다가 쿠시나메의 저자인 하킴 이란샨 덕에 거의 천 년이나 지나 멀고 먼 동방의 한 관객이 그래도 이런 좋은 구경을 하는구나 하면서 ‘그래 모든 것의 원천은 문학이야’로 자위적인 결론을 맺고 극장 로비로 나왔다. 출연했던 예쁜 공주와 잘생긴 근육질의 남자 배우들이 로비에 일렬로 서 있었다. 왜 서 있는지 몰랐는데 다른 관객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과 사진을 찍었다. 말로만 듣던 포토타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 옆에서 나도 한 번 찍을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쑥스러워 포기하고 극장을 나섰다.

함께 관람한 경북대 국문과 김기현 교수께 관람 소감을 여쭸더니 “신라 쪽이 무대일 때는 우리 악기를 많이 사용하고 국악적인 요소를 배경음악으로 활용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장소 인식에 혼란을 덜 주고 음악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말씀하신다. 한국민요학회장을 지내신 분답게 국악에 대한 애정이 깊다.

‘바실라’를 보고 나서 이제 이러한 공연은 창작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 역량이 집결되는 ‘제작’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더 좋은 ‘문화상품’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하응백 한국지역인문硏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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