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갈등 해법을 찾자] 연금 통합, 사회적 합의가 대전제 기사의 사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연금제도가 갖춰야 할 세 원칙으로 적정성·형평성·지속가능성을 꼽았다. 이 중 형평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연금의 기능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계층 간 형평성, 세대 간 형평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 말이었다.

이 원칙을 4대 공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으로 확대해보면 한국은 매우 불공평한 공적연금 구조를 수십년째 유지하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노후를 ‘용돈’ 수준 연금에 기대야 하는 반면, 직역연금(공무원·사학·군인연금) 가입자는 연금만으로 노후를 보내기 충분한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은 지속가능성에, 직역연금은 노후 보장에 무게를 둔 구조 때문이다.

◇국민연금 61만4000원 vs 공무원연금 243만2000원…연금소득 4배 이상 차이=국민연금 가입자 김모(30)씨는 매달 13만5000원을 연금보험료로 내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데 기를 쓰고 버텨도 지금 회사에서 근무기간 20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보고 있다. 최대 20년 가입을 목표로 월평균 소득을 375만원으로 잡고 연금액을 계산해보니 65세 이후 김씨가 받게 될 한 달 연금은 약 61만4000원이다.

김씨와 같은 해 취업한 공무원 이모(30)씨. 그가 내는 공무원연금 기여금은 김씨의 연금보험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씨는 정년을 채워 최대 33년간 공무원연금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3년 동안 월평균 소득을 375만원으로 잡으니 그가 받게 될 연금액은 243만2000원이 된다.

국민연금 가입자 김씨의 노후소득(61만4000원)은 공무원연금 가입자 이씨(243만2000원)의 4분의 1 수준에 머문다. 두 사람 모두 연금 외에 다른 소득이 없다고 가정할 때 김씨는 최저생계비를 조금 넘는 돈으로 살아야 하고, 이씨는 일하지 않고도 근로소득에 맞먹는 돈을 매달 받게 된다.

김씨가 운 좋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이씨처럼 33년간 유지한다 해도 소득 격차는 여전하다. 김씨가 33년 동안 월평균 소득 375만원일 때 받게 되는 연금액은 97만5000원이다. 그래도 이씨의 연금소득이 김씨의 2.5배에 이른다. 이 계산은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공적연금 급여 형평성 분석 및 연계제도 평가’ 보고서의 시뮬레이션을 재가공한 것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연금 소득액 차이는 다른 직역연금인 사학·군인연금과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국민연금은 2028년 40%에 이를 때까지 매년 소득대체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젊은 세대일수록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가입자 간 연금소득 격차는 더 벌어진다. 다만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어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국민연금과 직역연금 간 연금 소득 차이가 적다.

◇국민연금 ‘재정 안정성’, 직역연금 ‘노후 보장’에 초점=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걸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정 안정성’을 중시한다. 반면 특수직역이 대상인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은 가입자들의 ‘노후 보장’에 초점을 맞췄다. 이 차이가 국민연금과 직역연금 간 불평등을 키워왔다.

국민연금은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율은 높였다. 연금 수급액은 깎아나가고 보험료 부담은 키우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졌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기본이 돼야 하는 국민연금을 ‘용돈연금’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은 ‘기금고갈 위기론’이었다.

98년 첫 번째 개혁 당시 소득대체율은 70%에서 60%로 낮춰졌다. 2047년 기금 고갈이 예상된다는 추계 결과에 따라 연금액을 깎고 보험료율을 3%에서 9%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기금 고갈 예상 시나리오는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2060년’이었다. 결국 2007년 소득대체율을 50%로 낮추고, 2008년부터 해마다 0.5% 포인트씩 떨어뜨려 2028년부터 40%가 되도록 했다.

직역연금도 몇 차례 제도 개혁을 시행했다.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을 받게 되는 시점을 늦췄다. 하지만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데는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가입자들의 ‘노후 보장’에 무게중심을 더 둔 개혁이었다. 그 결과 공무원연금은 93년 기금이 고갈됐고 이후 매년 수십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국고가 투입돼 왔다. 군인연금은 74년부터 국고를 쏟아부어 2013년까지 19조원이 들어갔다. 사학연금은 아직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2020년 고갈이 예상된다.

직역연금이 보장성만큼은 꾸준히 지켜온 데 반해 국민연금은 보장성을 대폭 낮춰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 재정 안정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깊어지면서 끊임없이 기금고갈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개혁을 했으나 보장성도, 재정 안정성도 불안정한 상태다.

◇‘공적연금 통합’, 연금제도가 나아갈 방향=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과 일반 국민의 노후소득 형평성을 맞춰나가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다만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연금제도의 재정 안정성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직역연금의 과감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60%가 넘는 직역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기여율(보험료율)은 높여나가 재정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미래전략연구실장은 “각각의 제도가 과감한 개혁으로 재정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며 “연금제도를 지속해나가려면 재정 안정성 확보 방안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적연금 통합이 ‘하향 평준화’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선다. 보장성을 낮출 대로 낮춘 지금의 국민연금제도로 공적연금이 합쳐진다면 국민 전체의 노후 보장 수준이 떨어지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은 “그동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았기 때문에 공무원연금과의 형평성 문제가 컸던 것”이라며 “너무 낮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여 공적연금을 강화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사학연금의 통합 필요성도 제시되고 있다. 미국(87년) 중국(2014년) 일본(10월 예정)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통합했다. 하지만 직역연금 가입자들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통합을 이루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공무원연금 수급액을 대폭 줄이기로 합의하기까지 7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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