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한국의 엘리트 ‘美유학파’… 그 ‘양다리’를 파헤치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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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학벌사회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위치 경쟁, 자리 경쟁, 기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왔다. 학벌사회의 최상층에는 누가 있는가? 단언컨대, 미국 유학파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 박사였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이후 한국에 올 지배 엘리트가 누구인지에 대한 예언이었다.

‘지배받는 지배자’는 미국 유학파를 분석한 국내 첫 책이다. 저자인 김종영(44·사진)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문에서 “한국 대학과 사회의 지식권력은 미국을 빼고 이해될 수 없다. 하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와 한국 대학과 지식인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면서 “미국 유학파는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가 구축되고 유지되는 데 공모자 역할을 해왔다… 비(非)유학파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학문적 위치와 자원 때문에 미국 유학파의 헤게모니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다”고 이유를 분석한다.

저자는 지식이나 문화의 권력관계를 다룬 막스 베버, 피에르 브르디외 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삼고, 미국 유학생은 물론 유학을 마치고 한국과 미국의 대학과 기업에서 자리 잡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교육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의 지배를 받는” ‘지배받는 지배자’로 미국 유학파를 그려냈다.

책은 미국 유학생들이 왜 유학을 떠났고, 거기서 어떤 교육과 경험을 거치는지, 그리고 졸업 후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미국 유학의 동기가 ‘사회적 지위 상승의 수단’이고 ‘지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계급적 전략’이며 ‘엘리트 멤버십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동시에 한국의 대학과 사회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특정한 삶과 도덕성을 갈구하는 문화적 욕망이자 전략’이라는 점도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 또 한국 학생들의 유학 경험을 “미국 대학과 학문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체화하는 과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학문의 타자성, 이방인,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모순적이고 중첩적인 과정이기도 하다”고 파악한다.

미국 유학파를 분석하면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대학과 학문의 글로벌 위계 속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다. 이 간극에서 미국 유학파 지식인의 기회와 한계, 의미와 모순 등이 다 비롯됐다고 본다. 그는 이 간극에 대해 말하기 위해 ‘트랜스내셔널’(초국가적)이라는 말을 동원한다. 미국 유학파가 한국에서 갖는 지배자의 위치는 미국 대학이 제공한 학위와 지식 속에서 가능하고, 이는 미국과 한국의 학문적 권력 관계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유학파를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으로 정의한다. 미국과 한국 사이의 ‘중간에 끼인 존재’로서 이들은 “글로벌(미국 또는 서구) 지식 집단과 로컬(한국) 지식 집단의 ‘지식 간극’의 중간에 위치하며, 지식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 받아들여 한국의 로컬 지식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생존 전략이다. 이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양다리’를 걸쳐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인해 연구의 집중력을 상실하고, 탁월한 업적을 내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대학과 학문의 헤게모니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만큼 한국에서 미국 유학파가 헤게모니를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럽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에서 미국 유학파의 득세는 그 정도가 심하다. 저자는 한국 대학의 실패가 한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유학생들은 한국 대학을 ‘개판’, ‘삼류’, ‘시궁창’에 비유하면서 이런 더러운 곳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왔다고 말한다. 미국 유학의 동기는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 간의 지위 간극뿐만 아니라 ‘윤리적 간극’ 때문에 발생하며, 유학생들에게 미국 대학은 한국 대학의 천민성과 억압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해방적 기능을 가진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본인도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책은 미국 유학파로 한국 대학에 정착한 한 젊은 지식인의 절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는 “견딜 수 없는 한국 대학과 지식 공동체의 모순들을 극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책을 썼다”고 밝혔다. 미국 유학파를 들여다보는 것은 한국의 지배 엘리트를 이해하는 일이다. 동시에 그들이 가진 모순과 취약성을 바로 보는 일이며, 그 체제를 재구성할 단초를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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