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홍준표 이완구 이후가 수사의 본령이다 기사의 사진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가운데 첫 번째로 검찰에 출두했던 홍준표 경남지사는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 소환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리스트 8인 중 유일하게 친박(親朴)이 아닌 자신의 심경을 바둑 용어에 빗댄 것이다. 팻감을 쓴다는 것은 바둑의 패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곳에 희생타를 던지는 걸 말한다. 여권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고 경고한 셈이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초조해진 모양이다. 팻감으로 사용하지 말라던 그가 자충수를 두고 있으니 말이다. 불법자금 1억원 수수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아내를 끌어들이고 당의 치부(?)를 드러냈다. 2011년 당 대표 경선 기탁금 1억2000만원 출처가 ‘집사람의 비자금’이며, 매달 국회 대책비 중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더니 이를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다. 게다가 17대 총선 때의 공천헌금까지 들먹였다. 당 대표까지 지낸 인물이 자기 살자고 해괴한 주장을 하는 게 안쓰럽기까지 하다.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마저 실추됐다. 검찰이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으니 정치생명도 위태롭다.

첫 관문을 돌파한 검찰이 어제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소환했다. 불과 17일 전까지만 해도 국정 2인자였던 사람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나오는 신세가 됐으니 처량하다. 2개월 전 진두지휘한 ‘부정부패와의 전쟁’ 칼날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근데 취재진 앞에 선 그의 일성이 또다시 ‘진실’이다. 이임식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란 말을 남기더니 이번엔 “이 세상에서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결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3000만원 수수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국민 뇌리에 박힌 것은 릴레이 거짓말 논란밖에 없으니 진실 타령 또한 아이러니다.

홍 지사에 이어 출두한 이 전 총리도 사실 팻감이라면 팻감이다. 친박계이긴 하지만 과거 대선자금을 주물러본 적이 없으니 팻감으로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다. 검찰로서도 개인 비리이기에 부담이 적다. 또 관련자 진술과 각종 정황증거 등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대부분 파악하고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소환했을 것이 분명하다. 검찰이 그간 언급한 대로 기초공사를 한 뒤 두 개의 기둥(홍준표 이완구)을 세우는 작업이 완성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문제는 다음 차례다. ‘허태열(7억원) 홍문종(2억원) 유정복(3억원) 부산시장(2억원) 김기춘(10만 달러) 이병기’ 등 나머지 리스트 6인에 관한 수사다. 수사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201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을 규명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성 전 회장 메모와 녹취록 외에 이렇다할 단서가 없는 만큼 수사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 검찰 명운이 걸린 만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선 안 된다. 2012년 대선 직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관계자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는 성 전 회장 측근의 진술도 나온 마당이므로 대선자금은 반드시 파헤쳐야 한다. 현 정권의 역린(逆鱗)에 해당할 수도 있으나 성역 없는 수사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검찰은 미생(未生)의 대마(大馬)를 포획할 수 있는 수읽기 능력이 충분히 있다. 프로 기사들의 경우 바둑을 이기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무심(無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검찰에 필요한 말일 듯하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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