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우린 그렇게 부모가 된다 기사의 사진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 녀석이 인사를 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큰아이가 손을 흔들고, 그 녀석 허리춤 정도에 키가 닿는 막내가 스멀스멀 웃고 있다. 작은 입술 사이로 아랫니 하나가 없어진 게 금방 눈에 들어왔다. ‘녀석, 이를 뺐구나. 며칠 동안 실을 들이대며 흔들거리는 이를 빼달라고 보채더니.’ 이를 뽑고 그렇게 신나하는 아이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흔들거리는 이가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앞니를 갈기 시작한 또래 친구들에게 지기 싫은 모양이다….”

빛바랜 일기장을 뒤적이다 발견한 어느 날의 일상이다. 지금은 기억에서 가물거리지만 당시에는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에 우리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난 후 우린 매일 성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시간은 아마도 인간이 태어나서 혼자 앉고 일어서는 1년 동안이 아닐까. 삶의 경이로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치아도 나이에 따라 유치에서 영구치로 바뀐다. 앙증맞은 소년소녀가 성숙한 신사숙녀로 자라 가정을 이루고 대(代)를 이어간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생애지도’를 그리기 때문에 소소한 일상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도 많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기 쉽다. 가장 중요한, 가정 안에서의 역할은 차후로 미루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언제나 붙어 있고 싶어 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새 점차로 사라진다. 잠시라도 부모를 떠나 있으면 불안해하던 그 아이가 어느새 커버린 것이다.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들어주면 행복해 하던 그 아이들은 사라지고, 깊은 이야기는 친구들과 하는 아이들이 되어 간다.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은 자녀를 ‘세우는 일’이다. 여기엔 우회적 가르침이 효과적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축구 수영 농구 등을 가르칠 때 경기의 규칙만을 배우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팀워크, 인내심, 노력의 가치, 역경을 이겨내는 능력 등을 배우길 바란다. 이런 우회적인 가르침을 ‘헤드 페이크(head fake)’라고 한다.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1960∼2008)는 헤드 페이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다. 미식축구 필드에서 선수는 머리를 어느 한쪽으로 움직여 상대방을 그쪽으로 유도한다. 그러나 정작 선수는 반대쪽으로 움직여 나간다.

두 번째 종류의 헤드 페이크는 배우는 사람이 다른 흥미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실제로는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그의 ‘마지막 강의’에 숨겨진 목적 역시 여기에 있었다.

말기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 교수 랜디 포시는 2007년 9월 18일 피츠버그 캠퍼스에서 학생과 동료 교수 등 400명을 앞에 두고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는 당시 다섯 살 두 살 그리고 한 살 된 자녀들이 훗날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을 때 ‘마지막 강의’가 대답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의 강의는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전파돼 수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했다. 그는 장애물을 헤쳐 나가는 방법, 다른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 방법, 모든 순간을 값지게 사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또 53일간 원고를 구술해 마지막 강의란 책을 자녀에게 선물로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부모가 흔들리지 않는 활이라면 아이들은 과녁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화살이다. 이 활을 쏘는 창조주는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만들고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활시위를 당긴다. 부모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에 기뻐해야 한다. 그것이 자녀를 위한 헌신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신다.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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