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없어도 그만인 국무총리라면 기사의 사진
국무총리가 사실상 한 달째 공석이다. 이완구 총리 사의 표명 직후 후임자를 지명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늑장 인사가 재현됐다. 적임자가 여럿 있지만 한결같이 고사한다는 얘기가 나돈다. 박 대통령이 낮은 자세로 삼고초려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인선에 어려움을 겪지 않나 싶다. 금명간 지명한다 해도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임명하려면 20일가량 더 걸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헌법상 행정부 2인자인 총리 자리가 이처럼 오랫동안 비어 있는데도 국정에 별 탈이 없다는 점이다. 미세한 허점이 생겨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확실하다. 상당수 국민은 현재 총리가 공석이란 사실 자체를 잊고 산다. 설사 기억하더라도 국정 파행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 총리 무용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총리라면 굳이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총리 무용론은 사실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총리제도는 태생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헌법 제정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으로 내각제가 대통령제로 갑자기 바뀌면서 두 가지를 혼합한 기형적인 제도가 탄생했다. 헌법학적, 정치학적으로 이론적 기반이 약하다 보니 운용이 모순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 각부를 통할하게 돼 있다.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권한을 행사할 힘이 없다. 대통령 보좌는 하겠지만 행정 각부 통할권은 이름뿐이다. 총리가 국무위원 임명과 해임에 간여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실권에선 대통령 비서실장보다 약하다. 인사권도 예산권도 없이 어떻게 내각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작심하고 힘을 실어주지 않는 한 ‘의전 총리’가 될 수밖에 없다. 김종필 이회창 이해찬 정도를 빼면 모두 그런 총리였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굳이 총리제도를 폐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 총리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게 근원적으로 개선·발전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총리에 의한 권력 분점과 대통령·총리 러닝메이트제 도입이 그것이다.

권력분산과 책임행정 구현이 민주정치의 요체라면 대통령에 의한 지금의 권력집중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 한사람에게 국운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은 권한을 행사하되 책임을 지지 않고, 총리는 권한이 없음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불합리를 고치는 건 빠를수록 좋다.

차제에 대통령은 국정을 총괄하되 외교·통일·안보 등 외치와 핵심 개혁과제를 주로 담당하고, 통상적인 내치는 총리가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주석이 전체 국정을 책임지되 경제는 총리가 전담하는 중국의 행정권력 구조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총리가 독자성을 갖고 내치를 담당하려면 국민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나서 정권을 창출하면 저절로 힘이 실릴 것이다.

러닝메이트제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 폐해인 지역 구도를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통령 후보는 표를 많이 얻기 위해 당연히 자신과 다른 지역 출신을 총리 후보로 지명할 것이다. 그럴 경우 선거에서의 특정지역 몰표 현상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정을 운영하면서도 특정지역 독식을 막을 수 있다. 거기다 총리가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함으로써 안정적인 국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총리 인선하느라 골머리 썩힐 일도 없을 테고.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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