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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뷰-신국원] 다원주의 사회에서 복음의 모습은

기독교는 2000개가 넘는 언어집단의 신앙… ‘지적 상상력과 영적 용기’ 회복이 급선무

[월드뷰-신국원] 다원주의 사회에서 복음의 모습은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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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후반에 본격화되기 시작한 글로벌 다원주의 문화에는 오랜 역사적 상황이 깔려 있다. 직접적 원인은 근대 계몽주의가 이끌었던 이성주의 문화의 실패다. 계몽사상은 종교개혁 이후의 오랜 신·구교 간 무력충돌을 극복하기 위해 중립적이라 믿었던 이성을 삶의 공통적 토대로 삼아 평화를 추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성 역시 신앙 못지않게 독단적이며 특수성과 다양성에 억압적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다원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이 세력을 확장하는 빌미를 주었다.

교통·통신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한 사회 안에 여러 문화와 관습이 뒤섞이는 일은 다원주의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바로 문화혼종 현상이다. 이로 인해 세계 어디서나 다원주의가 선택이 아니라 강요되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자본주의가 새로운 글로벌 이데올로기로 부상한 것은 역설적이다.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 경제와 대중문화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압박과 이에 맞서 정체성을 지키려는 집단들의 저항 사이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선 특정 이해집단의 권익을 도모하는 ‘정체성 정치’가 난무한다. 인권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여성, 흑인, 동성애자 같은 특수 이해집단의 정치적 권익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야기되는 혼란과 갈등 극복이 오늘날 사회 연구의 핵심 과제다. 거기에는 이성적 통일성 회복을 꾀하는 신계몽주의에서 오히려 그 분산과 긴장을 고취하려는 포스트모니즘에 이르는 다양한 제안이 망라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 관심사는 차이를 넘어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 공적 영역만큼은 중립지대로 만들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방안을 제시하고자 애쓴다. 주류 이론들은 독단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종교나 철학에 기초한 ‘두터운’ 이론은 공적 담론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동의한다. ‘선에 대한 옅은’ 의식의 증진을 통해 민주사회의 존속을 담보하려는 정의론을 주장한 존 롤즈가 좋은 예다. 시민사회를 ‘옅은 도덕’의 ‘순한 상대주의’에 기초한 학문과 예술의 세련된 ‘논쟁의 장소’로 만들 것을 주장하는 로버트 우스노우도 같은 생각이다. 마이클 노박은 한 사회의 중심인 성소는 비워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적 광장은 벌거벗은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리차드 노이하우스는 이를 보다 세속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제는 공적 광장이 결코 빈 공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빈 공공의 성소는 ‘채워지기를 간청’하는 불안정한 과도기일 뿐이다. 실제로 ‘배타적 종교의 악령’을 내쫓아 청소된 광장엔 처음보다 더한 일곱 귀신을 불러들인다. 그곳은 인종, 계급, 성적 취향의 권익 쟁취를 위해 싸우는 개인과 집단들의 문화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그 진공은 또 공적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국가나 기업과 미디어에 의해 채워지기 일쑤다.

기독교 공동체는 지난 2000년간 전 세계 다양한 문화 속에 복음 증거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왔다. 교회의 출발점에 일어난 오순절 사건은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방언은 모든 언어를 하나의 통일된 언어로 바꾸는 기적이 아니었다. 십자가 구원의 진리가 다양한 언어와 문화 적응을 통해 만방에 소통될 일에 대한 예고였다. 초대교회가 유대의 벽을 넘어 그리스-로마를 거쳐 열방으로 나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현재 기독교는 2000개가 넘는 다양한 언어집단의 신앙이다. 기독교가 품은 문화적 다양성은 실로 엄청나다. 한국교회도 세계교회처럼 다양한 문화적응 과정을 겪었다. 이를 통해 특정 이념이나 정치경제 프로젝트에 편승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배웠다. 반면 공적 광장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많아진 지금은 소통단절, 보수성, 독단, 도덕적 실패 또한 복음 전파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다.

관건은 다원주의 시대정신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확신을 독단적이지 않은 태도로 설득력 있게 공적 영역에 제시할 능력이 있느냐이다.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다른 세계관을 지닌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선한 영향을 미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다원주의 사회문화와 선교적으로 대면하기 위해서는 선배 신앙인들이 보여준 ‘지적 상상력과 영적 용기’를 회복해야 한다. 그들이 보여준 특별한 관용, 겸손, 개방성 같은 사회적 덕목과 시민적 교양도 더욱 두텁게 갖추어야 한다. 이 지적·도덕적 덕목이 우리 시대에 성경적 샬롬의 문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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