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동길 경인양행 명예회장 “사카린, 당뇨·비만 환자에 추천… 완전한 명예회복 해야죠” 기사의 사진
2004년부터 '사카린 전도사'로 나서고 있는 김동길 경인양행 명예회장은 "궁극적인 목표는 사카린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라며 "당뇨와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물론 일반인 누구나 손쉽게 사카린을 선택할 수 있는 그날까지 사카린 전도에 계속 나서겠다"고 말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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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saccharin)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먹어서는 안 될 화학 감미료' '공포의 백색가루'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또 있다. 바로 '사카린 밀수 사건'이다. 지난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은 사카린 2259포대(약 55t)를 건설 자재로 위장해 일본에서 밀수입하려다 적발됐다. 더구나 밀수로 벌어들인 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국회 본회의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해 대정부 질문을 하던 당시 야당인 한국독립당 김두한 의원이 갑자기 국무위원석으로 달려가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등에게 인분(人糞)을 투척하며 이렇게 외쳤다. “이건 국민들이 주는 사카린이니 골고루 나눠 먹어라.” 과학적인 안전성 논란 이전에 ‘사회적·정치적으로 불량한 물질’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반(反)사카린 여론에 결정타가 가해진다. 캐나다 국립보건연구소가 1977년 사카린을 먹인 쥐들에게서 방광암이 발병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공포의 백색가루’라고 불렸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캐나다는 물론 미국·유럽이 사카린 사용을 제한했다. 우리나라도 절임식품류, 건포류, 청량음료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식품에 사카린 첨가를 금지했다. 더 이상 사카린이 국내외에서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이 잇따라 사카린을 유해물질 항목에서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은 예외였다. 여전히 ‘사카린은 발암물질’이란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4년부터 한 기업가의 집념으로 사카린은 누명을 벗게 된다. 한국의 대표적 염료 업체인 경인양행의 창업자 김동길(77) 명예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사카린 전도사’ ‘미스터 사카린’이라고 불리는 그를 지난 19일 서울 강서구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희수(喜壽)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실린 그는 사카린에 대한 족쇄를 풀기 위해 지금도 백방으로 뛰고 있다. 사카린의 완전한 명예회복이 그의 최종 목표라고 한다.



-사카린이란 게 정확히 어떤 것인가.

“사카린은 러시아의 화학자 콘스탄틴 팔베르크가 1878년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실험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빵을 집어먹다 이상하게 달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손에 묻은 흰 가루 때문임을 알아차린 그는 실험실로 뛰어가 시험관과 접시 등에 있는 흰 가루를 하나하나 핥아보았는데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이 사카린이다. 사카린은 라틴어로 설탕을 뜻한다. 석유류에서 추출되는 ‘톨루엔’이라는 물질을 원료로 복잡한 화학반응을 거쳐 만들어진다. 열에 강하고 물에 잘 녹아 식품첨가물로 그만이다. 설탕에 비해 300배 이상 달지만 감미도 기준으로 설탕 가격의 30분의 1에 불과해 경제적으로 이점이 많다. 칼로리 제로, 혈당지수 제로이기 때문에 당뇨 환자나 비만인 사람에게 축복받은 감미료나 다름없다. 참고로 설탕과 포도당의 혈당지수는 각각 ‘65’와 ‘100’이다.”

-중장년들에게 사카린에 대한 추억이 제법 많은 것 같은데.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됐는데 1960년대 설탕이 귀하던 어려운 시절에는 사카린이 단맛을 내는 값싼 재료로 각광 받았다.”

-사카린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을 설명해준다면.

“캐나다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사카린은 졸지에 발암물질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199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일 먼저 사카린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WHO는 ‘인체에 안전한 감미료’라는 선언을 하게 되고, 미국의 독성물질프로그램(NTP)도 2000년 암 물질에 관한 아홉 번째 보고서를 통해 사카린을 발암물질 항목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01년 사카린 사용금지 법안을 철회했고, 2010년에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사카린을 유해물질 항목에서 삭제했다. 올 3월에는 미국 플로리다 의과대학팀이 사카린에 상당한 항암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했나.

“국제기구의 잇따른 발표로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카린을 자유롭게 사용했지만 우리는 달랐다. 사카린 밀수 사건과 캐나다 발표 영향이 매우 컸다. 이로 인해 사카린 3대 국내 업체 중 두 곳이 사업을 접을 정도였다. 세계적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사카린의 안전성이 확인돼 규제가 완화됐으나 우리나라는 2012년에야 사용 기준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사카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4년 제일물산(현 JMC)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경인양행에서 만드는 전자 케미컬 소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염료 원료를 생산하고 있었다. 인수하고 보니 사업군 중 하나에 사카린이 있었다. 사카린은 JMC의 주력 품목도 아니었고 내수 시장도 그리 크지 않았다. 내수는 10%도 채 되지 않았고 90% 이상을 미국, 유럽 등에 수출했다. 좀 이상했다. ‘한국에서는 먹지 않는 사카린을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먹는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이미 해외에서는 사카린의 안전성이 확인돼 사용 규제가 거의 풀려 수출이 호조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카린의 진면목을 국내에 알리고 싶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사카린에 대한 오해를 푼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쉽지 않았다. ‘회장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난 판에 왜 그렇게 힘들게 싸우고 다니느냐’며 주위에서 강하게 만류했다. ‘우리 회사의 주력이 사카린도 아닌데 괜히 정부에 미운털 박혀서 회사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걱정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당뇨와 비만에 그만인 사카린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관련 부처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찾아다니고 청와대에도 진정서를 줄기차게 넣었다. 자체적인 어류 독성 실험을 통해, 또 서울대와의 연구 협력을 통해 사카린의 무해성을 입증해 나갔다. 이런 자료 등을 보여주면서 당국을 수년 동안 설득했다. 그 결과 2012년 9월 소주, 탁주, 껌, 잼, 양조간장, 소스류, 토마토케첩, 조제 커피 등 8개 식품에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이 고쳐졌다. 그리고 지난해 7월에는 빵, 과자류, 아이스크림, 빙과, 캔디, 초콜릿 등 마지막 남아 있던 어린이 기호식품에 대한 규제도 풀렸다.”

-그래도 성장기 아이들이 사카린이 포함된 식품을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한 건지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사카린이 안전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됐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평균 섭취량은 국제 기준의 1%에 불과하다. 과다 섭취를 걱정할 만한 수준도 전혀 아니다. 지인 중에 평생 단맛을 외면하며 살던 당뇨병 환자가 내가 추천한 사카린을 통해 다시 단맛을 접하고 행복해하고 있다. 막걸리에 사카린을 넣으니 맛이 좋아졌고 제조 원가가 낮아졌다고 말하는 막걸리 제조업자도 많다. 그리고 김치나 깍두기를 담글 때 사카린을 첨가하면 아삭아삭 씹는 맛이 더 오래간다는 사실은 세계 김치연구소 실험 결과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사카린에 대한 규제 완화라는 나의 1차 목표는 달성됐다. 그렇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사카린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다. 국민 인식이 잘못됐다면 바로 알리고 고쳐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당뇨와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물론 일반 사람들도 사카린이 들어간 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김동길 명예회장은

김동길 명예회장은 서울대 화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화학과를 수료한 뒤 1971년 신오화학공업사라는 염료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1976년 경인양행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염료안료협동조합 이사장(1983∼84년)을 역임한 그는 2003년 수출 5000만불탑, 2008년 수출 7000만불탑을 수상했고,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두 차례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경인양행 회장을 거쳐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그는 ‘사카린의 진실. 당뇨·비만 환자여, 사카린을 먹어라’라는 책을 올해 집필하기도 했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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