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 국토에 ‘독가스’ 살포… 재선충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 기사의 사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를 잘게 자른 뒤 훈증 처리한 ‘소나무묘’가 지난 2월 경북 포항시 연일읍 일대 야산을 가득 메우고 있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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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재선충병은 현재 80개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확산돼 있다. 서울 남산에도 상륙한 상태다. 사실상 전국으로 퍼진 재선충을 막기 위해 방제 당국은 메탐소듐이 들어간 훈증제를 국토에 퍼붓고 있다. 최근 해외 연구팀의 연구결과 메탐소듐은 맹독성 가스를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훈증제가 뿌려진 ‘소나무 훈증묘’는 깊은 산속부터 사람들 왕래가 잦은 마을 뒷산까지 들어차 있다.

◇주민들 모르게…사람 잡는 재선충병 방제=독가스인 이소시안화메틸(MIC)이 방출되는 메탐소듐 훈증제는 지난해 사용량이 폭증했다. 2010년 8만6888ℓ에서 지난해 94만9676ℓ로 11배나 증가했다. 강력한 독가스를 내뿜기 때문에 시중에서 유통이 금지된 훈증제인 ‘마그네슘 포스파이드’도 2만7039개나 쓰였다. 이 훈증제는 고체 상태 물질로 포장을 뜯으면 공기와 반응해 강력한 유독가스를 내뿜는다.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김정한 교수는 “마그네슘 포스파이드는 특수 물질이다.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밀폐를 잘해야 하며 반드시 주변에 경고문을 붙이고 사람 접근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제 현장에서 훈증제는 어떻게 사용됐을까. 재선충병이 창궐하고 있는 경북 포항과 경주 등에서는 방수포가 찢어져 훈증약병이 나뒹굴고 있었다(국민일보 2015년 2월 23∼25일자 참조). ‘재선충 방제 매뉴얼’에선 파쇄·소각 처리가 가능한 도로변에서 훈증을 금지하고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주택지 뒷산에도, 사람들 왕래가 잦은 도로변에도 훈증 처리한 소나무 묘가 만들어졌다. 일용직인 벌목 작업자들은 별다른 관리감독 없이 훈증 작업을 했다. 주민과 등산객이 독성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런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방제 현장에는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옮기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을 뿐 훈증제 위험성을 경고하는 표지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산림청 관계자 “소나무를 옮기는 것에 대한 경고는 해도 어떤 훈증제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경고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위험성을 전혀 모르는 일부 주민은 훈증 중인 소나무를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 임업연구관 출신인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 이병천 회장은 “(훈증제는) 휘발성이 강해 일단 사람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며 “토양에 흡착될 수 있고, 비 오면 다른 곳으로 이동도 가능해 피해 범위가 광범위할 것으로 보인다. 산에다 이런 독극물을 대량 살포해 대기 질뿐 아니라 식수원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뒤늦게 대기 질 측정에 나선 산림청=산림청은 메탐소듐이 MIC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메탐소듐이 원료인 훈증제 ‘킬퍼’와 ‘쏘일킹’ 등은 농약 허가를 담당하는 농촌진흥청에서 허가한 약제”라고 설명했다.

반면 농진청 관계자는 “고농도인 쏘일킹은 허가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발암성인지 유전자변이를 일으키는 물질인지 연구되지 않은 물질이다. 민가 주변에 대량으로 살포해서는 안 되고, 깊은 산속 등 불가피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쓰일 약제”라고 말했다. 방제 당국이 매뉴얼대로 파쇄·소각을 원칙으로 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국민일보의 취재가 시작되자 훈증 처리한 ‘소나무 묘’ 주변의 대기 질을 측정하고, 메탐소듐이 MIC을 방출했는지 검증 작업에 나섰다. 다만 농약 전문가들은 “메탐소듐은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라 훈증이 마무리된 뒤 제대로 측정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훈증 작업은 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가 활동하기 전인 5월 초에 모두 마무리됐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셈이다. MIC가 사람들이 호흡하는 대기 저층부에 머물다 희석되기 때문에 실제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밀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교수는 “미국 식물병리학회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살충제를 통한 재선충병 방제는 고비용이지만 효과는 떨어진다”며 “왜 방제 당국이 위험천만한 훈증 방식을 고집해 다국적 제약회사에 좋은 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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