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지우] 루슈디와 모디의 인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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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킨 듯 무시무시한 공력으로 뭔가를 엄청나게 쏟아낸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도대체 이 안에 없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킨,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소설이라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소설가 천명관은 저렇게 믿기 어려운 찬사로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소개했다. 살만 루슈디. 그의 유명세는 알고 있었지만 실체는 잘 몰랐다. 1988년 ‘악마의 시’라는 작품으로 이슬람권의 격분을 촉발한 필화 사건 때문에 ‘정치·종교적 센세이셔널리즘에 기댄 고약한 싸움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천명관의 극찬에 홀려 얼마 전부터 ‘한밤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예전의 편견은 무참히 깨지는 중이다. 출퇴근 시간에 읽느라 진도가 4분의 1밖에 못 나갔지만 작품이 뿜어내는 기운은 충분히 느껴진다. 고작 서른네 살 때 이런 걸 썼다니. 루슈디는 영국 정부가 이슬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만큼 굉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인이지만 그의 생래적·문학적 뿌리는 인도다. ‘한밤의 아이들’은 인도의 역사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본인도 책 서문에서 “인도의 구전문학 전통에 큰 빚을 졌다”고 밝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루슈디뿐만 아니라 그를 빚어낸 인도라는 국가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됐다.

나에게 인도는 그저 한심한 나라였다. 인구가 12억명이나 되면서 올림픽 같은 스포츠 이벤트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걸 보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3년 전 취재차 인도를 다녀온 경험은 그런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최대 도시 뭄바이에 있는 ‘인도의 관문’이란 거창한 이름의 건축물 주변은 쓰레기 천지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렇게 지저분한 곳이 뭐가 좋은지 사람들은 밤늦은 시각에도 북적거렸다.

빈부격차는 어느 나라든 존재하지만 인도는 유독 심해보였다. 뭄바이 번화가에서 마주친 화려한 외모의 젊은 여성은 고급 외제차를 타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반면 중부 오지(奧地)마을 아샤딥의 토굴 같은 진흙집에서 만난 30대 여인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쉰 살은 족히 넘어 보였다. 아샤딥의 아이들은 한결같이 반짝였지만, 왠지 저 아이들이 자라면 한심한 부모들처럼 눈빛이 흐리멍덩해지고 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곳에서의 며칠은 답답하기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측은지심이 발동해 쭈글쭈글한 진흙집 여인의 세 아들 중 한 명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가끔씩 내게 엽서를 보낸다. 구호단체가 시켜서 억지로 쓰는 것일 테지만 후원금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니 다행스럽다. 그 아이가 역경 속에서도 잘 커서 부모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근 들리는 소식에서 희망의 조짐이 나타나 반갑다. 새 지도자 나렌드라 모디가 집권한 뒤 인도가 환골탈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의 경제 개혁을 가리키는 ‘모디노믹스’가 추진된 지 1년 만에 인도의 경제성장률이 중국을 앞지르고 있다. 얼마 전 방한한 모디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인도에 투자 매력을 느낀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모디를 만나려고 총출동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저성장 늪에 빠진 지금 인도처럼 큰 나라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중국 경제가 주춤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동안 중국이 맡아온 신흥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이제 인도에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도가 단기간에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사회 곳곳의 구습(舊習)이 워낙 강고하기 때문에 모디의 ‘원맨쇼’ 개혁은 분명히 벽에 부딪힐 것이다. 최근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0명을 넘는 등 국가 시스템이 허술한 모습도 여전하다. 아샤딥을 비롯한 오지에까지 경제성장의 과실이 전달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별 근거 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남에 대해 속단하는 것은 잘못일 터. 그들보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식민통치하던 영국인도 아니면서 “너희는 가망이 없어 보여”라며 오만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던 것을 반성한다.

우리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와 그곳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시구(詩句)처럼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루슈디처럼 놀라운 재능과 모디 같은 리더십이 보이는 법이다.

천지우 경제부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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