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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노동자들이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수놓은 작품… 자수작가 함경아, 6년 만에 개인전

北 자수 노동자 손 빌려 작품 구현… 일사분란한 카드섹션서 영감 얻어 이미지 사이에 문구 숨겨 놓기도

北 노동자들이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수놓은 작품…  자수작가 함경아, 6년 만에 개인전 기사의 사진
단문문자서비스(SMS) 시리즈 중 ‘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Money Never Sleeps). 실크 천에 북한 노동자의 자수를 놓은 작품. 알록달록한 뭔지 모를 이미지 사이로 숨은 그림처럼 글자를 새겨 넣었다. SMS는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소통 방식이지만, 가장 아날로그적인 수공예를 통해 북한과의 소통을 시도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다. 2013∼2014년작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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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카드섹션의 일사분란함은 세계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그 날도 김일성 주석의 얼굴이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권총 이미지가 펼쳐졌다. TV앵글에 화면 하나가 잡혔다. 쥐고 있던 컬러 차트 앞으로 얼굴을 삐죽이 내밀더니 재빨리 다시 뒤로 숨는 소년의 얼굴. 지휘하는 사람의 사인을 보기 위함이었다. 한 소년이 거대한 권총 이미지의 작은 픽셀 단위로 보였던 그 순간은 함경아(46) 작가의 뇌리를 떠나지 못했다.

함 작가가 6년 만에 오는 4일부터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자수(刺繡)작가로 불리는 그의 독보적인 위치는 북한 자수 노동자의 손을 빌려 작품을 구현하는데 있다. 카드섹션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수 역시 북한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동집약적 예술 아닌가. 자수 한 땀 한 땀은 카드섹션의 픽셀 단위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작가는 북한에 자수 본을 사진으로 보내다가, 이제는 컴퓨터로 픽셀 단위가 보일 때까지 최대한 확대한 이미지를 천에 프린트해 전달한다. 픽셀로서의 자수 이미지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게 샹들리에 작품들이다. 가로 3.5m, 세로 2.6m의 대형 화면. 심연처럼 검은 바탕에 거대한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다. 너무나 사실적이라 사진작품 같아 보인다. 가까이 가서야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라는 걸 확인하고 놀라게 된다.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북한에 본을 보내 결과물이 돌아오기까지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조건적인 제약도 작업의 프로세스”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체제와 체제를 건너는 작업인데 그가 메시지의 총구를 겨누는 대상은 남한이기도 하고, 북한인 거 같기도 하다. 작가는 여러 버전으로 내놓은 샹들리에 소재에 대해 “상류층의 공간에서 권위와 욕망을 드러내는 장식적인 구조물이 샹들리에”라며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제국주의 열강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강의 각축 결과, 분단이 고착화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기울어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는 출판물과 인터넷 등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디지털 포토샵을 통해 분해함으로써 본래의 분명한 이미지를 해체하고 콜라주한다. 그럼으로써 역사적이거나 동시대적인 다양한 이미지들은 중의성을 갖게 된다. 이미지 사이에 문구를 숨겨 놓기도 한다. ‘Money Never Sleeps(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Are you lonely, too?(당신도 외로운 가요?)’ ‘Big Smile(크게 웃어 봐요)’ 등등.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들이다. 산악과 구름, 구름과 공, 점묘파 작품 같은 무수한 점 등 파편화된 이미지 사이에 이런 글귀를 수놓으면서 북한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계원예술대 유진상 교수는 “함경아의 작업이 갖는 긴장된 부분은 이런 지점에 있는 것 같다. 현대미술에는 경험이 중요한데 표현된 이미지 너머의 숨은 스토리까지도 작업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은 수공예로는 평면이지만, 익명의 북한 노동자에게는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전시는 7월 5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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