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신치용 삼성화재 배구단 단장 겸 제일기획 스포츠단 부사장 “땀만 믿고 간다” 기사의 사진
신치용 부사장이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 체육관에서 제일기획 스포츠단 경영자로서의 각오와 포부 등을 밝히고 있다. 그는 새로운 길을 걷는 데 대한 기대 못지않게 걱정이 많다고 털어놨다. 곽경근 선임기자
경기도 용인 수지의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배구단 체육관. 이곳에 들어서면 벽 한쪽에 격문처럼 붙여놓은 큰 글씨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戰勝不復(전승불복·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 ‘信汗不亂(신한불란·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謙兵必勝(겸병필승·겸손하면 반드시 이긴다)’의 사자성어와 ‘헌신(獻身)’이라는 단어가 코트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국배구 역사를 새로 쓴 신치용(申致容·60) 전 감독의 정수(精髓)를 함축하는 메시지들이다.

20년간 맡았던 삼성화재 감독에서 영전, 지난 1일부터 배구단 단장 겸 제일기획 스포츠단(축구 농구 배구) 부사장이 된 신 전 감독은 한국배구의 독보적인 기록 소유자다. 삼성화재 창단 감독이 된 후 실업팀과 프로 출범 이후 모두 20번 중 19번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그중 16번 우승했다. 특히 2007-2008시즌 이후 챔프전 7연패 위업은 한국 프로스포츠 모든 종목에서 처음 달성한 위업이다. ‘우승 제조기’란 말이 진부할 정도로 그에게 승리는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이런 공로로 그는 체육인으로는 처음 작년 1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오후 삼성화재 배구단 감독실 및 체육관에서 그를 만나 감독으로서의 소회와 경영진으로서의 포부 등을 들어봤다.

-새일을 맡게 된다는 것을 언제 처음 들었나.

“정식으로 통보받은 것은 삼성그룹 인사팀이 공식 발표하기 사흘 전인 5월 15일이었다. 그러나 이전에 감은 잡았다. 내 경력사항을 조사한다는 얘기가 들렸고 귀동냥으로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말도 들었다. 사실 단장님에게 ‘저도 한 20년 했으니까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미리 드렸다. 그룹에서 나를 배려해줘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 할 일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많이 다른데 심경과 각오는.

“배구인생 50년 가운데 삼성화재 감독 20년을 포함해 지도자만 32년 했다. 배구만 하면 못 할게 없지만 축구와 농구를 함께 관할하는 자리가 되다보니 무척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이제 단순히 승부에만 신경 쓰는 감독의 역할을 뛰어넘어 경영의 안목까지 지녀야 한다는 점에 압박감이 심하다. 내가 잘돼야 후배들에게도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다.”

-역점을 둘 부문은 뭔가.

“삼성스포츠단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될지 깊이 생각하고 있다. 운동을 잘하는 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세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우선 우리 스포츠단이 사회에 건강하게 기여하는 방안이 뭔지 고민하고 있다. 또 팬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가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아울러 프로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프로팀들은 적자 같은 이런 돈 문제에 너무 관대하다. 이익을 남기는 것은 힘들더라도 적자 폭을 스스로 줄이는 노력을 해야지 프로팀들의 미래가 있다. 서두르지 않고 일단 올해는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 살펴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지난 4월 6일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경기인 챔프전에서 제자인 김세진 감독이 이끄는 OK 저축은행에 3대 0으로 완패한 것이다. 경기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지만 도대체 그날 시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챔프전을 그따위로 무기력하게 했다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시합 후 3일간 드러누워 있었다. 그날 경기만 생각하면 속이 뒤틀린다.”

-기본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나는 훈련 외에는 믿지 않는다. 김세진이나 신진식 같은 유명 선수들에게도 늘 내가 하던 말이다. 철저한 훈련 없이는 절대로 좋은 경기를 할 수 없다. 몰라서 못하는 선수는 없다. 스포츠는 근육이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훈련을 통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내가 즐겨 쓰는 말 ‘신한불란’도 이런 바탕에서 차용한 말이다. 특히 기본훈련에 주력했다. 포지션과 상관없이 리시브와 2단 연결훈련을 계속 시켰다.”

-훈련의 원칙이 있는가.

“훈련의 기본은 집중력이다. 몰입해서 훈련에 임할 수 없는 컨디션을 보이는 선수가 있으면 즉각 제외시킨다. 아예 쉬게 하거나 때로는 운동장을 그냥 돌게 한다. 집중하지 않고 훈련을 하면 오히려 나쁜 습관만 몸에 밴다. 내 자랑 같지만 지금 각 배구 팀 중에는 내 스타일의 훈련 방법을 쓰는 곳이 있다.”

-지나치게 특정 용병선수를 많이 활용해 ‘몰빵 배구’를 한다는 지적을 받는데.

(사실 신 전 감독의 연이은 우승은 가빈, 안젤코, 레오 같은 뛰어난 외국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질문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목소리를 높이며 흥분했다. 감독 시절 늘 이 비난에 시달려왔음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이런 말을 한 다른 감독들를 강하게 비판했다.)

“저는 ‘몰빵 배구’가 아니라 ‘분업 배구’라고 말하고 싶다. 배구는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다.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 삼박자가 맞아야 된다. 이건 쉬운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팀워크가 철저히 맞아야 한다. 본인은 물론 동료 선수에 대한 배려, 헌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는 남들은 따라올 수 없는 탄탄한 팀워크를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용병 선수들이 마음 놓고 때릴 수 있었다. 다른 팀에는 외국인 용병이 없나. 그런데 왜 우리 팀을 보고 늘 그런 식으로 비판을 하는가.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져 속상한 팬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명색이 감독이라는 이들이 경기에 지고 나서 이 따위 소리를 하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자질 부족이다. 나는 싼 선수들을 데려와 최고의 선수로 키웠을 뿐이다.”

-선수들에 대한 카리스마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비결은 뭔가.

“뻔한 말이지만 솔선수범이다. 감독이 가장 무서워해야 되는 대상은 팬, 구단이 아니라 바로 선수다. 선수들 사이에 ‘우리 감독 엉터리야’라는 소리가 들리면 끝이다. 카리스마는 솔선수범에서 나온다. 나는 여태껏 단 하루도 아침 6시를 넘겨 출근해본 적이 없다. 늦다 싶으면 전날 집으로 가지 않고 감독실에서 잔다. 그만큼 본분에 충실했다. 또 하나 말하자면 진정성이다. 나는 거짓말하는 선수를 가장 싫어한다. 진정성은 본인과 팀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져 결국 좋은 결과를 낳는다.”

-한국 남자배구에서 외국인 용병선수들의 역할이 크다. 이들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모두 6명의 용병을 경험했다.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절실함이 선수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스니아 출신의 안젤코나 쿠바에서 온 레오는 돈에 대한 절실함이 대단했다. 가난한 부모를 도와야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결국 그 절실함이 큰 선수로 성장하는 동력이 됐다. 가빈은 능력은 좀 부족했지만 이탈리아나 러시아의 빅리그에서 뛰고 싶어 하는 절실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결국 그 꿈을 이루지 않았는가. 나는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왜 배구를 하는지, 배구를 하는 절실함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현역의 신영철(한전), 임도헌(삼성화재), 김상우(우리카드), 김세진(OK저축은행), 최태웅(현대캐피탈) 감독 등 제자가 숱하게 많다. 가장 아끼는 사람은 누군가.

“기자들은 걸핏하면 이 질문을 한다. 나는 그때마다 신영철을 꼽는다. 왜냐. 내 제자 중에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이다(웃음). 스승이 특정 제자를 가장 아낀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삼성이 왜 중책을 맡겼다고 보나.

“내 생각에는 그룹 이미지와 걸맞은 스토리가 있는 스포츠단을 만들어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최고의 기업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래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고 걱정이 더 많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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