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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박용천] 누군가가 몹시 미워질 때

[청사초롱-박용천] 누군가가 몹시 미워질 때 기사의 사진
살다보면 누군가가 이유 없이 미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좋아 보이기도 한다. 매일 접하는 뉴스에는 천하에 못된 사람이 등장하여 분노가 일어나기도 한다. TV는 특히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직접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쉽게 감정의 동요가 일어난다. 더구나 그 사건이나 사람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 보여주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게 된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그림자의 투사’라는 융의 설명으로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내가 인정하기 싫지만 갖고 있는 ‘그림자’

‘그림자’의 예를 들면 어린 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해 가장 분개하는 사람은 성인군자가 아니라 깡패들이다. 깡패들도 자신의 불량스러운 행동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신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림자라고 한다. 어린 학생이 담배 피우는 것을 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되어 강한 분노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아내가 시부모의 흉을 볼 때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이성을 잃고 흥분한다. 자기 자신도 인정하기 싫은 부모에 대한 불만을 무의식에 감추고 있었는데, 남이 지적할 때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경우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점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모를 비난하는 일을 조심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들의 이러한 특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사소한 일로 아무 생각 없이 시부모에 대한 비난을 하다가 큰 부부 싸움으로 번지는 수가 있다. 남자들은 이런 점에서 여자보다 취약하므로 아내들은 특히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투사’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의 일부분이 마치 밖에 있는 것처럼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그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하고 판단하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것들이 투사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보고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다. 마치 각자 자기 색깔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데 예를 들면 정치권력 집단의 상호 비난, 지역감정, 비방과 뒷이야기, 흑색선전 등은 자기의 무의식에 있는 그림자를 투사하여 상대방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미숙한 성격을 더욱 어둡게 채색하여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 융연구원 원장인 서울의대 이부영 명예교수의 최근 저서 ‘분석심리학 이야기’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거나 ‘자기 눈의 들보를 모르고 남의 눈의 티를 탓한다’는 말도 투사의 전형적인 예다.

집단적 투사는 사회적 편견 강화시켜

책에 나오는 내용을 조금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러 모인 군중에게 예수님이 말했다.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만이 이 여인을 쳐라!’ 하나둘 사람들이 물러났고 나중에는 예수님과 여인만이 남게 되었다. 예수님의 그 말을 듣고 물러선 그 시대의 군중은 그래도 순진한 편이다. 요즈음 같으면 한층 더 큰 소리로 ‘저 여인을 죽이라’ 고함침으로써 내부의 의혹을 잠재우려 했을 것이다. 집단적 투사는 모든 사회적 선입관념과 편견을 강화시킨다. 때로는 인터넷을 포함한 대중매체가 선동적으로 그런 집단적 투사를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괴롭더라도 남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투사되어 있는 것은 자기의 무의식의 일부분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배려와 존중보다는 미움과 분노가 팽배해 있다. 누군가가 미워질 때 흥분하기에 앞서 그것이 나의 그림자의 투사가 아닐까 하는 점을 검토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격은 한 단계 성숙할 것이다.

박용천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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