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경원대 미대’의 유쾌한 반란 기사의 사진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작가는 가천대(옛 경원대) 출신이다. 뿌리 깊은 서열화의 나라에서 대학 하면 단연 ‘SKY’다. 이어 ‘서성한’ ‘중경외시국동홍’ 순으로 꼽히는 게 현실인 만큼 가천대가 갖는 존재감은 크지 않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2012년 가천대로 통합된 ‘경원대 미대’는 미술계의 강소학교다. 홍경택, 김기라, 이환권, 조습, 함진, 진기종, 조지은, 손혜민, 강승희…. 국제무대에서 발탁된 스타급 작가들이 20, 30명이나 된다. 1982년 설립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졸업생이 줄줄이 배출되는 이유는 뭘까.

경기도 성남에 소재한 지리적 위치를 꼽는 이도 있다. 서울 강남과 가까워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간다는 얘기다. 임흥순 작가의 어머니가 봉제공장 보조였던 걸 보면 그냥 설에 불과한 것 같다.

이 대학 전·현직 교수와 출신 작가 몇몇을 취재했다. 종합하면 학생들의 자유로운 창작과 실험정신, 이를 뒷받침해주는 교육 시스템에 ‘폭풍 성장’의 비결이 있었다. 교수들은 수업에서 ‘안 돼’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김기라 작가(93학번)는 대학시절 ‘산 그림과 죽은 그림’이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어떤 학생이 흰 종이 자체를 제출했던 일화를 전했다. 치기로 보일 수 있지만 교수는 그냥 ‘왜’라고 물을 뿐이다. 합당한 답이 있으면 OK! 단색화로 유명한 윤형근(1928∼2007) 초대 학장 이래 만들어진 학풍이라고 한다. 예술에선 창의성이 생명 아닌가. 미대 입시 사정에서 데생 대신 창의성을 묻는 ‘발상과 표현’을 선도적으로 채택한 곳도 이 학교다.

‘핫한 작가’를 강사로 채용한다는 학교 방침도 학생들에게 자극제가 됐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 이용백, 한국 개념미술의 선구자 김홍석, 미술과 영화를 넘나드는 박찬경, 미술비평가 서진석(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윤재갑(상하이 하오아트 뮤지엄관장) 등등. 홍경택 작가(88학번)는 “역대 강사 명단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쟁쟁한 분들이 거쳐갔더라”고 했다. 동시대 미술의 주역들과의 수업은 학생들의 심장을 뜨겁게 했다. 김 작가는 “우리에겐 실력만이 살 길이라는 삼류 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대 하면 지금도 서울대, 홍대가 양두마차로 꼽힌다. 전통이 강한 만큼 짜여진 틀이 강하다. 예컨대 ‘1, 2학년 때 구상, 3, 4학년 때 추상’ 식의 구분이 그렇다. 이것저것 해서는 안 될 것도 많은 걸로 소문이 나 있다.

미술계 인사는 ‘외부 효과’를 들기도 했다. 사실 학연·지연이 강한 한국 안에서의 경쟁이었다면 실력이 좋아도 이들이 주목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미술의 국제화는 ‘수능이 걸러내지 못한 인재’들이 발탁되는 전기가 됐다. 해외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의 전시감독·큐레이터들은 학벌을 떠나 실력 중심으로 작가를 발굴했다. 바깥의 눈으로 보면 서울대든, 지방대든 다 한국 학교 아닌가.

미술시장, 아니 모든 분야의 국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간판이 아니라 실력이 무기인 시대다. ‘경원대 미대’의 성공사례는 서열화의 무게가 짓누르는 대한민국에 산소 같은 청량제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7개월여 공석이다. 초유의 사태 배경에는 서울대·홍대 미대 편향 논란이 있다. 현장에선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는 유쾌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책을 주관하는 관은 서열화와 끼리끼리 문화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손영옥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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