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규 교수의 바이블 생명학] 생명 나무

[김덕규 교수의 바이블 생명학] 생명 나무 기사의 사진
성경을 장엄한 서사시들을 엮어놓은 한 권의 시편이라고 한다면 그 시편에 쓰인 무수한 시어(詩語)들 중에서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생명나무이다. 생명나무는 창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있었던 그 생명나무는 어떤 나무이며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간교한 뱀이 등장하면서 생명나무는 아담과 하와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주목을 받게 된 결과이다. 하와가 유혹에 넘어가고 아담도 넘어졌다. 그로부터 타락한 영웅들이 끊임없이 추락하는 이야기들로 서사시는 채워진다.

그 반복되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을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을 즈음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밟을 남자가 등장하면서 서사시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그 남자는 이제는 영웅의 기상과, 명예와 기품을 다 잃어버리고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자들에게 빛을 비쳐 준다. 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사람의 생명이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자신의 죽음으로 증명해 보인다.

그 남자가 죽임을 당하는 현장에 등장하는 나무 십자가. 그 십자가는 사형 형틀이다. 극악한 죄인으로 하여금 극심한 고통가운데서 최대한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죽게 하는 도구이다.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그 남자는 그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다. 골고다 언덕에 우뚝 서있는 나무에 달린 그 남자.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생명나무가 그 곳에 서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이는 잘못 본 것일까.

그 남자는 자신의 제자였던 요한에게 에베소교회로 보내는 편지를 쓰게 하였다. 메시지는 처음 사랑을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떨어뜨린 성도들을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편지 말미에 성도들이 받을 상급을 언급하게 하였고 그것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또 무엇인가. 이 메시지로 인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온갖 고통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비로소 생명나무와 그 열매에 제대로 된 시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가 모여 이룬 강가에 심은 나무이다. 철을 따라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맺고 시들지 않는 잎사귀들을 내는데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생명나무는 생명수를 먹어 생명의 열매를 맺고 생명의 잎을 무성히 내는 나무인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가려져서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그 나무, 이는 마치 우리를 유혹하는 그 많은 것들로 인하여 우리들의 마음이 송두리째 다 빼앗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그와 흡사하지 않는가.

아무리 먹고 마셔도 채워지지 않고 해소되지 않는 그 허기와 갈증을 위해 생명의 떡과 생명수를 슬며시 건네주는 그. 그가 우리에게 준 그의 몸이 바로 그 생명나무의 열매가 아닐까.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라고는 없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그 역한 냄새가 나는 고름을 짜 내고 찢어진 상처를 꿰매 주는 그. 그의 손을 만국을 소성케 하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 생명나무는 바로 그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였고 지금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바로 그 분 말이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김덕규<동아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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