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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하응백] 아저씨들의 반창회

새록새록 떠오르는 고교시절 추억들… 안동의 독특한 정신문화에 심취

[청사초롱-하응백] 아저씨들의 반창회 기사의 사진
지난 주말 오전 10시경, 경북 안동의 봉정사 입구에 20여명의 50대 중반 아저씨들이 모였다. 서울에서 10여명, 대구에서 10여명이 승용차나 승합차에 분승해 도착했다. 안동에 사는 친구의 초대 형식으로 모인 반창회였다.

해설사의 안내로 국보가 두 개나 있는 고찰 봉정사를 둘러보면서 고려시대에 지어졌다는 극락전의 건축 양식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지붕의 곡선이 조선시대 건물보다 밋밋하다, 배흘림 양식의 기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등 비전문가들의 자기 확신성 의견들이 백화제방 식으로 개진된다. 고등학교 때 성적 상위권에 있었던 친구들은 해설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한다. 그때 그랬듯이 나는 슬그머니 절 뒤편으로 돌아든다. 마침 잘 익은 산딸기가 눈에 들어온다. 한 줌 가득 산딸기를 따서 입에 털어 넣는다. 사진을 찍어 바로 SNS 대화방에 올린다. 그 사진에는 공교롭게도 산딸기 열매가 두 개 찍혀 있다. 누군가 바로 댓글을 단다. “산딸기2 찍고 있네.”

‘산딸기2’는 80년대 중반의 에로 영화다. 검색해보니 영화 포스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배우의 상반신 사진이 육감적이다. 나머지 공간의 카피도 육감적이다. “따자! 산딸기를 따자! 사랑을 따자! 예술이었기에 용서받은 그 사실적 정사씬!” ‘별들의 고향’ 같은 영화가 당시에는 관람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보러 다녔었다. 모두들.

점심시간. 안동시내 식당에서 염소불고기를 먹었다. 두 친구가 대머리다. 장난삼아 두 친구를 모아 위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번 사진의 제목은 ‘빛나리2’다. 그중 한 친구의 별명이 ‘인수분해의 왕자’이었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당시 담임선생 별명이 수학 담당이셨던 ‘놀부’다. 심술보가 보통 아니고 ‘교편(敎鞭)’을 자주 휘둘렀던 선생님이다. 수업시간 중 놀부께서 한 수식을 두고 “이건 인수분해가 안 되는 거다”라고 했는데 한 친구가 “되는데요”라고 했다. 놀부께서는 “그럼 너 나와서 해봐” 했다. 그 친구는 칠판 앞에서 낑낑거렸으나 풀 수 없었다. 안 되는 거였으니까. 그 친구는 “안 되는데요” 하고 뒤로 물러섰는데 바로 그때 “이런 건방진 놈이!” 하면서 놀부선생의 교편 세례가 작렬했다. 그때부터 그 친구는 ‘인수분해의 왕자’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하회마을 건너편 부용대에 올라가 하회마을을 조망한다.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위 병호시비(屛虎是非)다. 병호시비는 퇴계 이황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 중 누가 더 서열이 위인가에 대해 영남 문인들 사이에서 약 400년간 논쟁한 것을 말한다. 학봉이 서애보다 나이는 4살 위였으나 벼슬은 서애가 영의정이었고, 학봉이 경상도 관찰사였으니 어느 기준을 삼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별 논쟁거리도 아닌 것을 두고 안동을 비롯한 영남 지역에서는 집안의 자존심과 학맥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라 치열한 논쟁을 거듭했다. 정통성과 자존심,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이 안동 지방의 독특한 정신문화이며, 그런 문화 속에서 안동 지방에서는 구한말 이후 특별히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했다. 다시 나라가 위태롭다면 안동 사람들은 끝까지 적과 싸울 것이다.

부용대를 내려와 류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했다는 옥연정사를 구경하고, 하회마을 입구 장터에서 간고등어와 파전과 막걸리를 차려 놓고 아저씨들의 반창회는 끝을 맺는다. 거나하게 취한 학봉의 후손은 다시 병호시비를 거론하며 학봉이 왜 왼편에 배향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서애의 후손이 같은 반에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동창들과의 2015년 초여름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하응백 한국지역인문硏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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