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행복의 타이밍 기사의 사진
삶이 힘겨울 때마다 우린 뭔가 비범하고 독특한 해법을 찾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지친 어깨를 도닥여주는 손길,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 등을 마주할 때 왠지 모르게 힘이 난다. 이를 테면 ‘굿나잇 키스’ 같은 아주 소소한 일상 같은 것에서 말이다.

“만일 지금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딸 이민아 목사(1959∼2012)의 3주기를 맞아 최근 출간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 수록된 내용이다. 딸에게 건네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딸을 가진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사랑하는 자녀를 앞서 보낸 부모들에게 푸른 멍처럼 스며든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렇듯 이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 전 장관 역시 사랑 표현에 미숙한 초보 아빠였나 보다. 이 목사는 생전에 출간한 ‘땅끝의 아이들’에서 “아버지는 굉장히 저를 사랑하셨지만 스킨십이나 안아주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는 유교가정에서 자란 분이시고 점잖으신 분이시니까 사랑표현을 잘 하지 못하셨어요. 저는 만져주는 것을 좋아하는 애였는데요. 따뜻함이 그리웠어요”라고 말했다.

자녀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친구와 한 약속은 잊어도 자녀의 생일은 기억하고, 직장과 조직에서의 성공보다 가정의 소소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며, 다정한 말 한번 건네주길 바라는 자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버지가 아닐까.

행복엔 ‘절대 타이밍’이 있다. 조금만 더 빨랐거나 조금만 더 늦었어도 그토록 행복하지 못했을 순간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딱 한 번만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축복해”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것이다. 또 자녀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좀더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봐 줄 것 같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눈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보며, 아버지의 가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아버지는 타고난 숙명이다. 자녀와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위안을 못 받았다 해서 열등감을 갖거나 상심할 필요는 없다. 이 전 장관은 책에서 딸이 이혼하고 홀로 있을 때, 아이를 잃고 주저앉았을 때, 긴 겨울 밤 아파할 때도 자신은 곁에 없었지만 딸을 안아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절망의 어둠 속에서 네가 내민 손을 잡아준 것은 너의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 대신 손을 내밀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였지. 그때 네가 안긴 것이 하나님의 가슴이었던 거야. 그래 잘 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 작은 손으로 꼭 잡았던 아버지의 손 대신에 너는 하나님의 손으로 인도된 거다. 네가 찾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가를 우리가 떠났던 그 여행의 기억 속에서 찾아본다. 네가 세상을 떠나던 그날 밤에도 나는 네 곁에 없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아빠를 따라나선 너의 작은 손에, 눈물로 젖어있던 모래 묻은 너의 작은 손가락에 입을 맞춘다. 굿나잇. 굿나잇 키스를 한다.”

하루 30초의 시간만이라도 매일 저녁 굿나잇 키스를 하듯 누군가의 영혼을 바라보자. 우린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그리고 자식이다.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