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청사초롱

[청사초롱-손수호] 머물고 싶은 도시를 위하여

광화문광장-세종문화회관 연결해야 마땅… 서울역고가 공원·보행권 차원에서 바람직

[청사초롱-손수호] 머물고 싶은 도시를 위하여 기사의 사진
주말에 편하게 보는 TV 프로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여행물이다.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길 위의 우정이라는 콘셉트는 같지만 내용은 아이와 어른만큼 다르다. 얼마 전 벨기에 여행에 오른 ‘비정상회담’ 친구들은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수도의 얼굴격인 그랑팔레스 광장을 찾았다. 친구들은 그곳에서 벨기에와 처음 만났고, 수많은 외국 젊은이들과 가슴으로 인사를 나눴다.

만약 외국인 친구가 밤늦게 서울에 도착한다면 어디부터 데리고 갈까. 고궁이 더없이 좋지만 밤이면 출입을 못하는 적막강산이다. 홍대앞은 불야성을 이루긴 해도 대표성이 없다. 머물고 싶은 곳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나마 떠오르는 곳이 광화문광장이다. 서울의 중심이자 오픈 스페이스다. 약점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원래 광장에는 여러 사람이 노닐다 어둠이 내리면 아이들과 노인이 떠나고, 초저녁에 중년들이 떠나고, 젊은이들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야 하건만 광화문은 자동차의 행렬뿐이다.

이런 사정은 설계 당시부터 예견된 것이어서 서울시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양방향 차로는 미국대사관 쪽으로 모으고,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자는 내용이다. 백번 옳다. 지금 광화문광장은 죽은 공간이다. 외국 관광객들이 기웃거리다 사진 찍고 사라지고 만다. 만일 세종문화회관 쪽 시가지와 연결된다면 그랑팔레스처럼 밤늦도록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듣자하니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있다고 한다. 대로가 이동하면 이면도로로 자동차가 몰리고 그러면 주거환경이 악화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차로가 줄면 자동차도 줄어든다는 게 증명된 사실이다. 거기에다 집 주변에 근사한 광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호수를 하나 들이는 것처럼 멋진 일 아닌가. 지역의 경쟁력이 빌딩의 수가 아니라 보행공간의 크기임을 감안하면 마냥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역고가도도 머물고 싶은 서울, 걷고 싶은 도시의 조건으로 접근하면 쉽게 답이 나온다. 산업화 시대의 산물인 고가도로는 역사적 유물 보전 차원에서 하나 정도는 남겨둘 가치가 있다. 공모전 당선작에서 그리고 있듯 수목원의 그늘에서 도성의 경관을 조망하고 도심을 걸어서 관통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물론 남대문과 만리재 주변 상인들을 위한 배려는 필요하다. 그러나 논점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당초에 고가는 1970년 건설 이후 45년이 지나면서 안전 문제가 대두돼 철거하려다 보행 전용으로 재활용하자고 바꾼 것이다. 따라서 보행공간 활용을 반대한다는 것과 대체도로 건설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서울역고가의 변신은 반기지만 행정가들의 ‘명분 독재’가 우려된다. 그럴싸한 명분이 주어지면 주변을 헤아리지 않고 모든 것을 그 명분에 수렴시키는 것도 독재다.

서울역고가와 뉴욕의 하이라인은 태생과 출발이 다른데도 ‘서울의 하이라인’으로 포장한다거나, ‘7017 계획’을 발표하면서 17m의 교각과 17개의 보행로 외에 시장의 임기 2017년을 슬쩍 끼워넣은 점이 그런 걱정을 하게 한다.

광화문광장의 이동이나 서울역고가의 보행공간화는 도시환경 측면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다. 사람은 걸을 때 삶의 경험이 가장 크게 확장된다. 인간의 활동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에 활력이 넘친다. 행정가들이 업적에 앞서 오직 시민을 생각하고 접근하면 새로운 광장과 공중정원을 통해 서울의 표정이 한결 밝아질 것이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