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판문점을 떠들썩하게 하라 기사의 사진
1989년 남북 국회회담 취재차 판문점에 처음 갔을 때 가슴 아픈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측 건물인 판문각 앞에는 북한 인민군 병사가 ‘경계총’ 자세를 하고 있는데, 남측 자유의 집 앞에는 미군 흑인 병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북한군의 상대가 한국군이 아니라 유엔군 소속 미군이란 사실을 실감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측 경계병을 한국군으로 바꾼 것을 보고 다행이란 생각을 했지만 판문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양측이 총을 겨누고 있는 군사 분단의 현장이다.

판문점. 서울 서북쪽으로 62㎞, 평양 남쪽으로 215㎞에 위치한 지역 이름이자 동서 800m, 남북 400m의 장방형 공동경비구역(JSA)을 가리킨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 평화의 집, 통일각 등 24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다. 이곳에선 1953년 7월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조인된 이후 남북회담이 수도 없이 열렸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분단의 상징인 동시에 화해협력의 상징이라고 해야겠다.

이런 판문점에 요즘 적막이 감돈다. 이명박정부 출범 첫해부터 남북대화가 사실상 끊기다시피 하면서 개점휴업이다. 박근혜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굵직굵직한 제안을 내놨지만 북으로부터 전혀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본 생각이다.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8월 15일 남북 공동 행사를 판문점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남북 민간단체들은 각기 ‘광복 70돌, 6·15선언 15돌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결성해 두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려고 했으나 남북 당국이 소극적으로 응해 흐지부지되는 형국이다. 6·15 기념행사는 양측 민간단체들이 각기 간소하게 치르고 끝냈다.

하지만 8·15 기념행사는 남북 당국이 관심만 갖는다면 얼마든지 뜻 깊고 성대하게 공동으로 치를 수 있다. 민간단체들이 공동행사를 위한 준비회담을 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8·15 행사를 서로 자기 지역에서 치르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남측은 서울에서, 북측은 평양에서 갖겠다고 우긴 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양측 당국의 ‘오더’가 작용했다.

양측의 입장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남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 한껏 통일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상황에서 70주년 공동행사를 평양에서 열도록 양보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북측 역시 서울 공동행사에 참여할 경우 들러리 선다는 느낌이어서 내키지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댄 분단과 화해협력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행사를 치르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남측은 서울 행사에 북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단독으로 치를 계획이라는데 밤낮 통일을 외치면서 단독행사가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열고 판문점 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해보는 게 좋겠다. 물론 북이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북은 15일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당국 간 대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이런 때 우리가 70주년 공동행사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한 원 포인트 당국회담을 제의할 경우 북이 의외로 쉽게 응해올 수도 있다고 본다.

판문점 공동행사가 성사될 경우 당연히 국제사회가 한반도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해 손을 치켜드는 모습을 연출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차선으로 양측 총리라도 참석해 악수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대성공이다. 판문점을 떠들썩하게 하라. 그래야 통일의 그날이 앞당겨진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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