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명호] 메르스가 리더십을 묻는다 기사의 사진
모두의 안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참사보다 훨씬 큰 공포와 심리적 충격을 준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까지 유행할 정도다. 우리의 총체적 역량으로 메르스를 이겨낼 것이지만, 역병의 대습격은 국가·정치 리더십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각자도생은 믿음의 상실이자 리더십 붕괴의 다른 표현이다.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백성의 믿음 없이는 나라가 설 수 없다)이라고 했다.

초기부터 청와대와 정부는 판단을 제대로 못했고 예측에 실패했으며, 무엇보다 민심을 얻지 못했다. 정부가 뭘 얘기해도 선뜻 믿기지 않는다는 이들이 주위에 훨씬 많다. 과잉 공포라고? 손 잘 씻으면 괜찮다고? 그런 면이 좀 있다손 치더라도 이 지경까지 해놓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리더십을 용서할 수 있을까. 어떤 형태로든 국가적 위기는 늘 옆에 도사리고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위기 극복의 명장면들은 국가·정치 리더십의 존재 이유를 말해준다.

메르스는 우리의 정치와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엄중하게 묻고 있다. 위기가 슬금슬금 다가올 때 정치가 어떻게 선제적으로 나서야 하는지, 정치 지도자들은 어떻게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가야 하는지, 위기 앞에 태산 같이 버티는 리더십은 있는지, 두려움은 어떻게 제거해 나갈지를 묻고 있다. 박근혜정권의 리더십은 세월호에 이어 이번에는 더 깊은 바닥을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메르스 이후다.

지금 국가·정치 리더십은 방향타를 잃었다. 의제 설정 능력도, 이견을 한데로 모아가는 설득력도 없다. 정치가 보여줘야 할 정반합(正反合) 원리도 작동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들의 언동에서는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메르스 예방과 치료, 방역체계 개선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불안과 공포 제거, 신뢰 구축, 위기 극복을 위한 결집력 형성 등은 정치의 영역이고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과 의무다. 이런 기능이 없는 정치는 백해무익하다. 대통령이 뒤늦게 어디를 간들, 여야 지도자들이 마스크 벗고 현장에 간들, 감동이 없는 것은 왜인가. 거기서 리더십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정부·정치권·대통령 리더십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비판한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도 있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의 명언이다. 비판한다고, 돌팔매질한다고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냉소와 혐오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사실 정치 혐오 프레임은 이미 권력을 가진 이들이 예전부터 은밀히 활용하는 수법이다. 혐오 대상으로 고착화시키면 보통 사람들은 냉소만 하면서 포기하게 된다. 정치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기득권은 유지된다. 유권자가 견제와 감시를 게을리하면 이렇게 된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은 무능력과 무책임을 거둬내는 선거여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가, 정치 리더십이 나올 수 있다. 메르스는 우리에게 정치의, 정치 리더십의 본질을 묻고 있다. 지역·진영 논리에 찌들어 있는 사이 정치는 국민의 안위와는 무관한 것이 돼버렸고, 위기 국면에서 능력과 책임 있는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일상으로 돌아가라”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리더들의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화만 나게 만든다. 메르스는 국가·정치 리더십을 다시 복원시키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역병에 허약하게 무너진 리더십에 비하면 메르스 공포는 오히려 가볍다. 메르스가 보낸 경고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각자도생 이후 모두의 숙제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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