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이승구] 치유와 치유집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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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극단적인 잘못이 있는데 그와 연관된 오해도 적지 않다. 첫째는, 치료는 의료기관의 몫이지 교회가 관여할 것이 전혀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치료해주시는 일은 없다는 오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그 후의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이신론(理神論)적인 입장인데 극단적인 자유주의적 입장에 선 사람들이 흔히 이런 오해를 한다. 이는 이 세상의 불신 풍조를 따라가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기독교를 없애거나 기독교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또 하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참으로 기도하면 모든 병을 다 치유해주신다는 오해다. 이는 주께서 필요하면 병을 고쳐주시고, 대개는 기도의 응답으로 고쳐주신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오해한 생각이다. ‘참으로 치유하시는 하나님’(출 15:26)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모든 병을 지금 당장 다 고쳐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신 예도 많이 있지만 치료해주지 않으신 예도 나온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도바울이다. 바울은 그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 또는 사단의 사자라고 한 질병이 그에게서 떠나도록 세 번씩이나 간구하였으나 주께서는 고쳐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니라”는 말씀만을 주셨다(고후 12:7∼9). 또한 기도하여 여러 사람의 병을 고치도록 하셨으나 디모데에게는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명령하기도 하셨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딤전 5:23).

성경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병에 대해 자신과 교회와 함께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도들은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약 5:16)는 명령도 받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주께서 모두 다 치유해주시는 것이 아니다. 물론 주님의 뜻에 따라 병을 치유해주시기도 하고, 히스기야처럼 15년 더 살게도 하며(왕하 20:6), 그보다 더 오래 살도록 하기도 하시고, 혹 죽었던 사람들이라도 필요하면 다시 살려주시기도 한다(왕상 17:17∼24, 왕하 4:32∼37, 막 5:21∼43, 눅 8:43∼56, 눅 7:11∼17, 요 11:1∼44).

특히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역할 때에 참으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마 11:5). 그는 참으로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4:23). 또한 그의 제자들도 동일한 일을 행하도록 했다(마 10:1∼8). 그러나 그들 주변의 모든 병든 사람을 모두 다 고쳐주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치유와 이적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주신 계시를 확증하는 신임장과 같은 것이었다. 일종의 천국 맛보기였다.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른 상태는 더 이상 병든 것이나 죽은 것과 같은 게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적 이적(apostolic miracles)에 대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런 치유와 같은 이적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교회 시대에도 주께서 원하시면 병을 치유해주시고, 교회는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그런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다만 바른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치유 자체에 집착하거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집회를 해서는 안 된다. 건전한 교회는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집회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들은 ‘치유 집회’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공적으로 정한 예배시간이나 기도회시간에 함께 모여 주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주께서 필요하시면 우리들 가운데 병든 사람을 고쳐주시는 일이 많지만 우리는 그것을 중심으로 집회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것도 공동체 전체가 하여 어떤 개인의 능력으로 병이 고쳐지는 듯한 오해를 할 만한 상황을 연출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는 중에 주께서 병을 고쳐주시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만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부디 우리 주변이 모두 이런 건강한 교회들과 건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가득 차는 날을 향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한다.

□이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이승구(합동신대원대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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