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귀여운 부인 기사의 사진
‘귀여운 여인’이 있습니다. 노예해방운동가로 알려진 스토(Harriet Beecher Stowe·1811∼1896) 부인입니다. 우리에게 ‘엉클 톰스 캐빈’이라는 동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죠.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죠. 스토 부인이 왜 귀여운 여인일까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 때문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와중 링컨 대통령은 스토 부인을 워싱턴으로 불러 만납니다. 스토 부인은 1852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발표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거든요. 이 작품 하나가 노예해방 여론을 환기시켜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놨죠. 남부 흑인 노예 매매의 비참함과 천부의 인권을 억압하는 청교도의 나라를 적나라하게 다루었으니까요. 19세기 최고의 사실주의 문학으로 평가하죠.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문은 바로 이 스토 부인 작품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 당신이 전쟁을 일으킨 그 귀여운 여인이군요.” 링컨은 스토 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온화한 미소를 띠고 말하죠. 그는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스토 부인이 화답합니다.

“대통령님. 그건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저는 단지 우리 그분의 말씀을 필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스토 부인은 뉴잉글랜드 코네티컷주 리피필드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스물두 살 때 신시내티의 신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이사한 후 거기서 계속 살았습니다. 그의 형제자매 11명 중 일곱 명이 목사가 됐습니다. 언니는 교육자였고, 여동생은 여성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믿음의 집안에서 참하게 성장한 규수였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녀의 눈에 이해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웃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흑인 노예 학대였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단지 유색이라는 이유로 사람들 손에 의해 구별되는 것을 목격했고, 그것이 ‘최후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사 58:10)이라는 마음이었죠.

그러나 그 역시 여성이 ‘새로운 식민지’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여성 인권’은 당대 미국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습니다. 목사의 딸이었기에 그나마 상대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물다섯에 캘린 스토라는 신학자와 결혼했습니다. 주부로 만족하도록 훈련됐었죠. 하지만 목화밭에서 벌어지는 흑인 노예에 대한 끔찍한 매질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틈틈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집필했습니다. 워싱턴주의 노예제 반대 신문 ‘내셔널 이어리’를 통해서 연재한 거죠.

스토는 링컨 앞에서 “필사했다”고 말했습니다. 뭘 베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베낀 거죠. 창조질서를 거스르며 주린 자와 갇힌 자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펜으로 전쟁을 선포한 겁니다. 그는 승리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목사의 구혼’ ‘올드 타운의 사람들’ 등을 통해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었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거릿 미첼(1900∼1949)도 미국 남부의 전통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인물입니다. 워싱턴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돋아 올 거예요’라는 문장은 예수 부활의 확신처럼 우리의 가슴을 진동시킵니다. 그녀 역시 성경 필사의 정신으로 문학에 임했습니다. 중국 선교사의 딸로 인습에 의한 속박을 다룬 ‘대지’를 쓴 펄 벅(1892∼1973) 역시 땅의 죽음과 부활을 성경에서 베껴 썼습니다. 팔복을 주시는 하나님 마음으로 베꼈지요.

요즘 우리 사회는 명망 있는 한 작가의 표절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그의 잘못은 단 하나입니다. 정신이 아닌 공허한 텍스트를 베낀 것입니다.

jhjeon@kmib.co.kr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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