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교 50년] 한·일 첨예한 세 개의 전선… 위안부 문제·독도 침탈 야욕·강제징용 피해 보상 기사의 사진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평탄하지 않았다. 일본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우리 국민의 유전자에 새겨진 반일(反日) 감정을 부추겼다. 우리로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와 독도 침탈 문제는 양국 간 첨예한 전선으로 자리매김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갈등의 최대 숙제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군이 관여해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만큼 1965년 한일협정만으로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제사회도 우리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에 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나치 시대에 다른 나라가 겪은 끔찍한 경험에도 독일이 다시 국제사회에 참여한 것은 독일이 과거를 똑바로 마주봤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역사인식을 간접 비판한 바 있다. 중국도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는 일본에 대해 ‘난장판 국가’라고 힐난했다. 반면 일본은 이미 위안부 문제가 수교와 함께 맺은 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국제적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독도 침탈 의욕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우경화 정책으로 더 타오르는 모양새다. 정부는 그동안 국제 분쟁 소지를 감안, 일본에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조용한 외교’를 펼쳐 왔다. 그러나 일본의 공세가 극심해지면서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으로선 처음 독도를 방문했다. 일본은 이를 기회로 침탈 야욕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아베 내각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竹島·일본이 독도를 이르는 명칭)의 날’ 행사에 3년 전부터 정부 대표를 파견하고 있다. 또 일본 내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을 표기하도록 독려하는 형국이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도중 러시아의 동해 종단을 막기 위해 독도에 망루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시마네현 소속으로 고시하고 무단 점유했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국제법상 무주지(독도)를 선점했으며 역사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고시 직후 우리나라나 다른 어떤 나라에도 이 내용을 통보하지 않았다. 관보나 언론에도 공시하지 않았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뒤에야 구두로 통보한 것이어서 사실상 침략전쟁으로 빼앗은 점령지에 대한 권리 행사였을 뿐이라는 우리 측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독도야말로 일제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첫 번째로 빼앗긴 지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 보상 문제도 잠복돼 있는 문제다. 2012년 대법원이 한일협정만으론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일본 군수업체 등을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이 강제징용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하면서 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휘발성을 갖추고 있다. 피해자와 일본 기업의 소송에 그치지 않고 언제든 양국 간 외교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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