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교 50년] 엔저에 정치·사회적 악재 겹쳐… ‘역대 최악’ 기사의 사진
과거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1970, 80년대 주부들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주방용품은 일본의 ‘코끼리 밥통’이었다. 90년대 학생들에겐 소니의 ‘워크맨’이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 등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서 삼성, LG에 대한 선호도가 일본 브랜드보다 높아졌다. 한·일 수교 후 50년 동안 양국의 경제적 관계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일협정 후 한국에 일본은 가장 중요한 경제 협력국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15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일협정을 맺은 1965년 한·일 교역량은 총 2억2000만 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859억5000만 달러까지 늘었다. 50년 사이 교역량이 391배 증가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투자액도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일본은 지난해 24억9000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 이는 유럽연합(EU), 미국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삼성이 산요전기와 합작으로 69년 삼성산요전기를 설립하면서 전자산업에 진출했고, 미쓰비시자동차의 도움으로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생산할 수 있었다.

협력 관계가 경쟁 관계로 전환된 것은 80, 90년대에 접어들면서다. 경제규모가 성장한 한국은 대일 무역적자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뒤 사실상 대일 수입규제 조치인 수입 다변화 제도를 도입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국 기업의 일본 따라잡기가 본격화됐다. 포항제철은 98년 신일본제철을 제치고 조강 생산량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고, 현대중공업이 조선 산업에서,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일본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최근 양국 경제적 밀접도는 한일협정 이후 가장 느슨해졌다는 평가다. 교역량은 2011년 최대(1080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세다. 대일 무역의존도도 올해 1∼5월 7.6%를 차지해 1965년 당시(34.5%)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여기에는 엔저의 영향도 없지 않지만 사회·정치적 악재에 따른 양국 간 갈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한·일 양국은 지난 2월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양국 통화교환)를 종료했다. 당시 미국의 금리인상 우려와 중국 성장률 부진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양국 금융안정을 위한 장치였던 스와프를 14년 만에 중지했다. 일본 언론들은 “양국의 관계 악화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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