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교 50년]“양국 정상, 대표라는 책임감 갖고 마주봐야 한다” 기사의 사진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최근 한 강연에서 자신은 ‘날조 기자’가 아니며 우익들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57) 전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는 21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은 사죄와 보상이 아니라 경제협력 형식으로 이뤄졌다"며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쟁점이 되지 않아 한국인 전쟁 희생자는 고립됐고 결과적으로 '개인'의 문제는 보류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이 있지만) 어쨌거나 희생자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았지만 한·일 간 감정의 골은 그 어느 때보다 깊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역사 때문에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 있는 반면 일본 사람들은 ‘지금까지 많이 사과하지 않았나, 언제까지 사과해야만 하느냐’며 한국이 지나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의 간극이 생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50년 전 한일협정이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아니라 경제 협력의 형식으로 이뤄진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쟁점이 되지 않았으며 피해자가 목소리를 높이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날 양국 간 첨예한 갈등의 빌미가 되는 위안부 문제가 표면으로 나온 것도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이후 여성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나오면서부터다. 당시에는 한국의 지도자도 (그런 형식의) 한·일 회담의 조기 타결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게 ‘개인’의 문제가 보류됐고 결과적으로 한국인 전쟁 희생자들은 고립됐다. 반면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일 국교 정상화 때 경제 협력을 실시했고 보상 문제는 그때 해결됐다는 인식이 많다. 또 그 이후에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이 나왔고 나름대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민간 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는 ‘일본은 많은 성의를 보였는데’ 하는 감정이 확산된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아시아여성기금을 위안부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당신의 24년 전 기사를 갖고 당신에게 협박을 일삼았는데, 그들이 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 요즘 일본에서 ‘혐한(嫌韓)’ 정서가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내 기사를 비난하면서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폄하하고 있다’고들 한다. 이 ‘폄하하는’이란 단어에 그들이 위안부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이 있지 않을까. 내가 표적이 된 것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기사가 내 이름으로 나갔기 때문이며,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아사히신문의 역사인식에 대한 일본 우익세력 내 반발도 한몫했다. 또 일각에서는 내 장모가 일본 정부에 대해 재판을 일으킨 단체(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간부였다는 점을 거론하는데 그 이면에는 일본인들 사이의 민족 차별의식도 있다고 본다. 여전히 일본에는 혐한 또는 혐중(嫌中)이 존재한다. 그 이면에는 2차대전을 전후해 유행했던 다른 아시아인에 대한 멸시가 남아있는 것이다. 전후 70년인 오늘날 이런 시각을 극복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거꾸로 도지고 있는 것 같다.”

-양국 간 인식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선 양국 정상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가 서울특파원을 지내고 있을 때 한·일 양국의 지도자였던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서로를 존중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이 나왔고 그 이후로 상호 문화교류도 활발해졌다. 이제라도 양국 정상이 공동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아베 신조 총리나 박근혜 대통령 모두 나름대로의 정치 신조가 있겠지만, 각국의 대표라는 책임감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또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의 연구자가 협력하면서 양측의 인식 차이를 메우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양국의 언론에도 과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한·일 양국의 언론인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의견을 더 나눠야 할 것이다.”

-당신은 지난해 12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고 썼다. 강제연행이었다고는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위안부 동원과정에서 넓은 의미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나.

“나는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에 대해서만 ‘속아 위안부가 됐다’고 썼다. 당시 김씨를 직접 취재하지는 못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김씨의 녹음테이프를 듣고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증언이 있고 어쨌거나 희생자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총리가 8월에 발표하는 종전 70주년 담화에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이목이 몰려 있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반성’을 표명하겠다고 했지만 주변국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의 의미가 담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의 저명한 일본 연구자 187명이 지난달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지 말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그중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를 강화하고 나라와 나라 간의 협력 관계를 키운다’는 대목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사과하고 미래에 전하는 것은 전쟁과 인권 침해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민주주의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아베 총리가 정치가로서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대담한 행동’에 나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도 많다. 당신은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양측이 이웃이라는 점이다. 이사할 수 없다면 결국 일의대수(一衣帶水:겨우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 아니겠나. 비록 양 국민의 성격이나 인식에 차이점도 있겠지만 결국은 마주보고 가야 한다. 못할 것도 없다. 2차대전 직전까지 적대했던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했던 선례도 있지 않은가.”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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