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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김종헌] 워싱턴DC의 대한제국 공사관

[청사초롱-김종헌] 워싱턴DC의 대한제국 공사관 기사의 사진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한 일본대사관과 주일 한국대사관이 서울과 도쿄에서 개최한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각각 참석해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알렸다.

특히 일본은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를 참석케 하여 한·일 관계에 대해 미국 측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과 일본의 문제는 단순히 양국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새삼 지금의 상황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미국의 중요성을 인식한 고종은 백악관 근처 아이와서클(현 로간서클)에 있던 집을 2만5000달러에 구입하였다.

한국교포들에게 독립의 상징 공간

지하 1층, 지상 3층 빅토리아 양식으로 1877년 지어진 이 건물은 남북전쟁에서 탁월한 공적을 남긴 펠프스의 집이었다. 당시 한국의 미국공사관 개설을 방해하던 청나라(중국)의 압박을 오웬 데니(Owen N Deny)와 호레이스 알렌(Horace Allen)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고 당시 국무차관이자 펠프스의 사위였던 세벨론 브라운(Sevellon A Brown)을 통해 구입했다. 1899년부터 한국공사관으로 사용된 이 집은 당시 각국 공사관 중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건물로서 각종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05년 9월 미국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중재에 의한 일본의 고무라 주타로와 러시아의 세르게이 율리예비치 비테 간의 포츠머스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공사관은 더 이상 외교공관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워싱턴DC 대한제국공사관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아시아를 둘러싼 세계사의 격변기 속에서 벌어진 한국과 미국과 일본의 외교관계에 대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대한제국공사관은 한국 독립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어 왔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국의 항일운동을 적극 지원한 호머 베잘렐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는 “지금은 대한제국이 점차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이 민족의 정기가 어둠 속에서 새롭게 불타오르면 ‘잠자고 있는 것이 곧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의 독립을 예언했다.

새 한·미·일 관계 자리매김하는 場으로

1945년 광복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한 한국정부는 2012년 대한제국공사관을 재매입할 수 있었다. 1892년 당시의 30여개 각국 공사관 중 일본공사관이나 중국공사관은 이미 사라지고 없고, 내부까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유일하여 한국의 광복 70주년에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제 대한제국공사관의 보수설계를 마치고 워싱턴DC의 허가를 받아 실질적인 공사를 진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공사관이 있는 로간서클 일대가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노예들의 주거지로 사용되면서 쇠락되었다가 최근 활기를 되찾고 있다. 한국공사관 재개관과 더불어 로간서클 일대가 새롭게 활기를 찾는 것은 프랑스 건축가 랑팡(L’Enfant)의 1791년 워싱턴DC 계획안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워싱턴DC의 구도심을 활성화하고 흑인과 백인들의 지역적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또한 지역주민들이 편안하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제국공사관은 한국과 미국, 일본이 역사과정 속에서 나타난 국제관계에 대한 틀을 새롭게 설정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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