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군대 가지 않은 사람이 잘되는 사회 기사의 사진
트로이 왕국의 후계자 헥토르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될 것을 예감하는 아내를 뿌리치고 전장으로 간다. 가족과 헤어지기 전 그는 어린 아들을 안기 위해 팔을 벌리지만 아들은 투구의 말총장식을 보고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자 헥토르는 투구를 벗어 땅위에 내려놓고 아들을 안아 어우르며 기도를 한다. “여기 내 아들도 나와 똑같이 뛰어나고 힘이 세어 일리오스(트로이)를 강력히 다스리게 해주소서. 그가 싸움터에서 돌아올 때 사람들이 아버지보다 훌륭하다고 여기게 해주소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이 장면이 감동적인 것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투구를 벗지 않던 헥토르가 기꺼이 투구를 벗고 어린 아들이 훗날 용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데 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꼽히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리스연합군이나 트로이군의 수백명 장수들은 모두 왕족이거나 귀족 출신이다.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인류의 역사는, 특히 선진화된 문명을 일군 나라는 귀족이나 지도층 가문의 아들들이 솔선수범하여 먼저 전쟁에 나간다. 이것이 선진국의 전통이요, 역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우리나라의 상류층은 어떻게 해서든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행태는 이제 일부 계층에서 전통이다시피 됐다. 보통 집안의 아들들은 군대 가지 않는 것은 대부분 꿈도 꾸지 않는다. 197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보통의 우리는 독재시절의 갈등과 번민 때문에 차라리 군에 가면 그런 고통에서 해방될 줄 알았고, 군복무를 마쳐야 복학을 하든 취업을 하든 사회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화된 사고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기왕 가는 군대라면 3년간 혹독하게 뺑뺑이 도는 곳으로 보내지기를 희망했다.

그렇게 34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특수한 배경이나 뛰어난 정보력을 총동원해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래도 그다지 억울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우리 때문에 고향의 부모형제들이 평안하다고 믿었고,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훗날 군 면제받은 사람들이 주로 우수한 학력을 가졌거나, 부유층이거나, 권력층의 가문에 집중돼 있으며, 그들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전문지식을 익혀 출세가도를 달리고,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으로 진출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건 억울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사회 고위층 중 군 면제자의 비율이 사회 평균보다 다섯 배 이상 많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심중한 병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현재까지 3명의 국무총리 중 2명(아들 문제까지 합치면 3명 모두)이 병역문제로 인사청문회에서 홍역을 치르는 것을 국민들은 보았다.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이 부유층, 고위층, 그리고 명문대 출신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국가의 미래와 관련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상류층일수록 먼저 전쟁에 나서는 선진국과 달리 그 반대의 경험이 누대로 축적되는 사회는 흔들리지 않는 모럴을 확립하기 어렵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하여 7년, 8년씩 피해 다니다가 결국 소집 면제된 사람들이 훗날 장차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면 생각이 맑은 젊은이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요즘 박근혜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비판의 요지는 상황에 따라 제때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지시하는 말의 구체성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정해진 대로, 원칙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맞는다고 할 수 없다. 군 문제 역시 그렇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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