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소신으로 가장한 독선과 위선 기사의 사진
수년간 대한민국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며 국민은 참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위 이 땅의 지도자들이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국민을 위해서….” 문제는 국민이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통령도 여야의 지도자도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하기보다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윌로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한 말이 있다. “나는 교인들을 위해서라면 진리 이외의 모든 것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지도자들이 진리와 소신, 철학을 꺾는 것이 아니라 ‘소신’으로 가장한 그들의 고집을 꺾는 것이다. 대통령을 향해 불통의 리더십이라고 비판하는 야당의 리더십 역시 불통이다.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지도자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은 그래서 불행하다.

그래도 어지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시민운동가, 교수 그리고 당리당략과 사리사욕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적어도 돈과 명예, 세상이 추구하는 이기적 권력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믿었기에 어둠 속에 작은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소위 ‘소신’이 있는 사람들이다. 소신은 무엇인가? ‘소신’은 결과와 관계없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기득권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의 불행은 믿었던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결국은 독선과 위선에 가득한 자들과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이다. 독선과 위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소신은 ‘독선’이고, 타인을 의식하는 소신은 ‘위선’이다.” 자신의 강력한 소신을 위해 누군가 희생되고 상처를 주는 일은 참 무서운 일이다. 이때 우리는 그 사람의 소신이 사실은 고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이 시대의 위정자들에게서 주로 보이는 모습인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돋보이거나 자신의 입지를 위해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거나, 심지어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일까지 한다. 이러한 소신은 자신과 다른 쪽의 사람을 기꺼이 적으로 돌린다.

요즘 정치권에 등장하는 ‘막말’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선명성을 주장하기 위한 유치하고 독선적인 방법이다. 마치 성경에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 돌로 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예수님에게 그 여인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한 연약한 인간으로 보였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분노는 가진 자와 높은 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에 대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누군가를 위해 막말을 하는 사람들보다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막말이 그러하듯 좋은 말에 대한 책임도 없다. 좋은 말은 대체로 소신을 포기한 사람들과 자신에게 돌아올 평가에 연연해 누군가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의 정체는 곧 위선이었음이 드러난다. 예수님 당시에도 지도층이었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은 사람들 앞에 늘 좋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이 얼마나 의로운지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람의 불의함을 부각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아!’라고 질책하셨다. 회를 칠한 무덤은 겉으로 보기에 깨끗하지만, 그 속에서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난다. 거짓의 무서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고, 기꺼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사람들이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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