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도경] 대통령의 흔적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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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맞느라 준비하는 데만 1주일이 걸렸던 것 같다. “군 장병의 노고를 치하하고, 애로사항을 듣겠다.” 대충 이런 취지였던 듯했다. 하지만 기자가 병사로 복무했던 부대는 대통령 방문 소식이 전해진 뒤 완전히 마비됐다. 모든 일정은 ‘디데이(D-day)’ 이후로 미뤄지거나 축소 또는 취소됐다.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초순의 일로 기억한다.

‘투 스타’인 사단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 현장에 나왔다. 모자에 박힌 두개의 별은 강렬한 햇빛에 반사돼 멀리서도 그의 등장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가 나타나면 병사들의 삽질은 빨라졌고, 독려하는 장교들의 손짓은 ‘오버질’을 더했다.

그렇게 1주일. 잡풀이 제거되고 촉촉하게 물을 머금은 잔디밭은 당장이라도 축구 국가대표 A매치가 열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연병장과 배수로에 가득했던 잡석은 제거됐고, 초소들은 페인트로 단장됐다. ‘일격필살’ ‘무적○○’ 등 결기 어린 표어들이 곳곳에 나붙었다. 훈련 중에 다쳐 팔이나 다리에 깁스를 한 병사, 돌출 행동 우려가 있는 관심병사 등은 휴가를 당겨써야 했다. 그렇게 ‘보기 싫은 것들’ ‘못난 것들’이 다 치워졌다.

D-1.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달이 벌어졌다. 낡고 볼품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전부 막사 옥상에 올려놨다. 오래된 가구와 전자제품, 손때 묻은 공구 등 묵직한 것들로 옥상이 채워졌다. 그런데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온다는 것이다. 항로가 우리 막사 위를 지날 수 있다고 했다. 즉시 “너저분한 옥상을 보실 수 있으니 치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웃픈’(웃기고 슬픈) 에피소드지만 당시에는 정말 긴박했다.

옥상을 말끔히 치우고 페인트칠까지 마치는 데 하루가 꼬박 갔다. 덩치 큰 물건일수록 올릴 때보다 내릴 때 힘들고 위험하다. 집에도 못 가고 대통령 방문 행사에 매달린 간부들은 잔뜩 독기를 품고 있었다. “(대통령 방문) 끝나면 병원 보내줄게.” 공병대의 대형 트럭들이 옥상에서 내린 물건들을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당일 부대에는 이동 금지령이 떨어졌다. 손발톱, 속옷, 두발 등 위생 점검을 마친 병사들은 바른 자세로 내무반에서 대기했다. “새로 지은 (깨끗한) 막사로 가는 걸로 동선이 짜였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긴장들 해라.” 정복을 갖춘 간부들은 초초한 듯 복도를 서성였다. 그렇게 정적 속에서 한 시간여, 그가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부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대부분 병사들은 대통령 그림자도 못 봤다.

‘대통령의 흔적’은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야간경계 근무 때 탄약이 지급되는 상황실의 정중앙에 사진이 붙었다. 사단장이 활짝 웃는 대통령 뒤에 엉거주춤 서 있다. 대통령의 방문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정돈됐던 부대 환경은 1주일도 안 돼 원상복귀됐다. 우연히 대통령 사진에 찍힌 미모의 여성 경호원이 병사들 간에 한동안 회자됐을 뿐이다.

‘높은 분’이 현장 가서 찍은 사진이 언론에 나올 때마다 군대 시절 옥상이 떠오른다. 십수 년이 흘렀지만 이런 사진 한 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을지 상상을 멈추기 어렵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장관의 방문을 준비하는 학교들을 취재한 적도 있다. 가는 곳마다 교장은 사단장, 교감은 대대장, 교사는 장교·하사관, 학생은 병사로 완벽하게 대입됐다. 여기서도 ‘병졸(兵卒)’들은 수업 대신 청소에 동원됐다. ‘○○○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현수막이 걸린 학교도 많았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현장 방문 사진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이 뜨겁다. 국정 1인자 풍자물이 범람하는 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일단은 그렇게 믿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놀라운 현상은 아닐 것이다. 최근의 박 대통령 패러디물은 나오는 족족 히트다. 그가 메르스 대응 병원에 갔을 때 대통령 동선을 따라 붙어 있던 ‘살려야 한다’는 비장한 문구는 다양한 버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가뭄으로 마른 논에 물을 뿌리는 장면은 갓 모내기 한 논을 물대포로 망친다는 ‘직사 논란’으로 번졌다. ‘아몰랑’ ‘유체이탈 화법’ ‘박근혜 번역기’ 등 뼈 있는 유행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쯤 되면 청와대는 “대통령의 진심을 몰라준다”며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억울한 이는 메르스 사태 와중에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불려나온 간호사, 속이 타들어가면서도 전시성 행사에 억지로 나오게 된 농민들 아닐까.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린 장면에 별다른 소득 없이 ‘병풍’으로 동원됐으니 말이다.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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